(2006/10/11)
지난 일주일 동안 싱가폴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에 불이 붙어 거기서 발생하는 연기가 싱가폴 하늘을 뒤덮은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에서는 종종 화전민들이 일부러 불을 내는 경우가 있다.
물론 불법이며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이번에도 100명 가까운 방화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 화전민들은 오늘도 기회만 생기면 불을 붙인다.
세상 오래 살다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화재에까지 관심을 가지는 일도 생긴다.
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이틀에 한번꼴로 내리던 비가 일주일동안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
연무가 극심했던 지난 주는 일부 학교는 임시휴교를 하기도 했다
연무 때문에 감기에 걸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여기서도 콜록, 저기서도 콜록…
나 역시 사흘째 감기를 달고 다니는 중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화전민이 숲을 태우면 싱가폴에 사는 내가 감기에 걸린다
이게 세상 사는 이치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이 돌고 돌아 내게 영향을 준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곳 싱가폴의 한인들이 그 소식을 듣고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혹시 전쟁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어 걱정하는 이들이 첫번째다
자신은 한국을 떠나 있어도, 한국에 남겨둔 가족이 걱정되고, 친구가 걱정되고, 나라가 걱정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잘 됐다는 반응이다
우리가 못 가지는 핵을 북한이라도 가지게 되면 일본이 망언하고, 중국이 역사왜곡할 때 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통일 되면 그 핵이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되는 것도 덤이란 생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화전민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지른 불이 싱가폴 전체를 연무로 뒤덮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화전민들이 일부러 그런 건 분명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는 누군가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동안 김정일의 오판으로 그 무기가 사용되었을 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 화전민들이 싱가폴 사람들 미워서 불 지른 게 아니듯 북한이 우리를 공격대상으로 삼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터졌을 때 우리 방송들은 어지간하면 당분간 비를 맞지 말라고 충고했었다
그 낙진이 흘러 흘러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핵무기가 일본이나 중국에 떨어지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북한의 핵무기 때문에 미치광이 부시가 선제공격이라도 감행하면 한 뼘도 안 되는 한반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게 분명하다
미국 하는 짓을 보면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정당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줄이도록 줄기차게 요구하는 게 맞다
통일 된 이후 우리가 핵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되는 일일까
핵무기는 생산보다 보유 및 폐기 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북한과 미국, 아니 북한과 그 어느 나라와 다툼이 생기더라도 결과적으로 우리에겐 피해가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자칫 재앙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칼을 녹여 낫을 만들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반도에서 핵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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