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9)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은 설일까, 추석일까?
아무튼 민족대이동 (이것도 우리 아이들 세대가 되면 ‘그게 뭐예요?’ 라는 소리가 나올 지도 모른다) 이 벌어지는 설날이 코 앞이다.
벌써 고향에 가 있는 사람도 몇 있다.
싱가포르에서 6년째 이주노동자 생활하느라 명절이라고 해도 고향에 못 가는 처지에 이런 말 하는 게 우스울 수 있지만 그래도 해 보련다.
트위터를 보면 ‘난 진보’ 하는 사람들 참 많다.
아니 트위터 안의 성향만 보면 이 나라는 벌써 적화 통일 된 듯 싶다.
다들 진보고, 다들 쿨(Cool)하고, 다들 지식인이다.
희망버스 한번 안 타 본 사람 없고, 촛불 한번 안 들어 본 사람 없고, 봉화마을 몇 번씩 다 갔다 왔다.
오가는 길에 나꼼수 듣는 건 필수고.
그런데 그런 쿨하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명절이라고 고향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양성평등.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여자만 부엌에 있느냐며 다툼을 일으켜서 결국은 어머니 (혹은 시어머니)만 주방에 서 있게 만든다.
민망해진 남편과 아버지(시아버지)가 거드는 척 하지만 걸리적 거리기만 하고. 절은 왜 남자만 하고, 고스톱엔 왜 여자 안 끼워 주느냐며 팔을 걷어 붙이는 바람에 판을 깨기도 한다.
양성평등을 자기 집에서는 말고 시댁에서만 주장하는 분들도 있더라.
지난 추석에는 시가에 먼저 갔으니, 이번 설에는 처가에 먼저 가야 했었다는 말을 시부모 앞에서 하는 바람에 다들 난처하게 만든다.
틀렸다는 게 아니다.
맞는 말인데, 지혜롭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세상 불의엔 잘도 눈 감으면서 컴퓨터 모니터 앞과 부모님 앞에서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지사로 바뀌느냔 말이다.
또 나름 진보랍시고 부모와 친지의 정치성향에 시비를 건다.
평생을 여당만 찍어 온 부모님은 어느새 꼴통이 되고, FTA나 BBK 가 뭔지 모르면 시대에 뒤쳐진 뒷방 늙은이 취급이다.
나꼼수 안 듣는다고 무시하고, 아직도 스마트폰 안 쓰고 피쳐폰 쓴다고 무시한다.
트위터도 하고 페이스북도 해 보라고 권하는 건지, 자랑하는 건지 모를 소리만 골라 한다.
말도 안 통하고, 재미도 없으니 친지들 모여 있든가 말든가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휴대폰을 두드린다.
그리곤 한마디 ‘저, 여당 찍으시려던 부모님 설득해서 이번 총선 대선 야당에게 투표하시게 만들었어용’
그 분들 야당에게 투표하는 게 아니라 어버이연합에 가입하신다.
쿨하고 진보적인 지식인 자식들 때문에.
그런 행세하는 사람들 집에 가면 책장에 노무현과 김어준과 공병호와 홍정욱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게 공통적인 특징이다.
보수와 진보를 훑어서 뽀대 나는 것만 골라서 취하는 게 그 사람들 특징이거든.
수박 겉만 핥아 놓고는 씨 없는 수박부터 멜론까지 논하는 사람들이거든.
쿨하고 진보적인 젊은 지식인들에게 부탁 하나만 하자.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는 니들 맘대로 진보 행세 하시라.
촛불집회든, 나꼼수 콘서트든, 정봉주 석방 행사든 만만하고 안전한 곳 골라 다니며 기념사진도 찍으시라.
하지만 명절에 고향가면 입 딱 다물고 부모님, 친지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라.
내 집에서 양성평등 구현하고, 내 자식들 민주 인사로 키우고, 거리에서나 목소리 높이시고, 고향에 가서는 그냥 어르신들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시라.
그게 진보적 삶의 실천이다.
‘진보가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싸가지는 없어.’
그게 어른들이 보는 우리의 모습이다.
뱀발 1 : 설날에도 쉬지 못하고 마트 같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 많다. 그 분들께 잘 하시라. 괜히 시비나 붙지 말고.
뱀발 2 : 버스 기사, 휴게소 직원, 톨게이트 요금 징수원에게도 잘 하시라. 얼마나 힘들겠어.
뱀발 3 : 어디 가서 함부로 ‘진보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마시라. 시대의 유행에 따라 액세서리처럼 진보를 덧입는 사람 때문에 온 삶을 걸고 진보를 위해 살아 온 사람까지 우스워진다.
뱀발 4 :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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