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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클럽메드, 모든 게 다 제공되는 데 왜 난 불편하기만 했을까.

 

클럽메드 다녀온 이야기를 해 놓고 여러가지 일로 인해 많이 미뤄졌다.

덕분에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시간이 지나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곳에서 한 일이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다.

 

전편에 이야기했듯 클럽메드는 세계적 리조트 체인이며 제법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곳이다.

먹을 것, 마실 것, 즐길 것에 대한 걱정은 처음 결제할 때만 하고 그 후로는 그냥 맘 편히 즐기라고 말하는 이른바 “올 인클루시브” 다.

하루 세끼 식사는 물론이고, 별도의 식당에서 이뤄지는 늦은 아침과 늦은 점심까지 챙겨 먹으면 하루 다섯끼를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가까운 바에서 나오는 간식까지 배가 고플 틈이 없다.

부페식으로 나오는 식사는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다.

서양식, 중국식, 일본식, 인도네시아식… 입맛 까다로운 사람도 한 두가지 이상 먹을 만한 걸 찾을 수 있을만큼 다양하게 나온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기 때문에 한국인 직원도 상주하고 있고, 식당에도 한 두개 이상의 한국 음식이 김치와 함께 나온다.

 


술과 음료 역시 마찬가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맥주, 위스키, 칵테일, 와인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제공된다.

맥주는 그냥 잔 가지고 가서 따라 마시면 될 정도다.

 

보통의 리조트에 가면 별도로 계산해야 하는 각종 해양 스포츠와 액티비티도 여기선 다 무료다.

시간만 잘 맞춰 가면 뭐든 다 해 볼 수 있다.

프라이빗 해변에서 카약, 윈드서핑 등의 해양 스포츠, 배드민턴, 테니스, 농구, 골프 연습 등 구기 종목은 기본이고 양궁, 서커스 체험, 요가, 댄스… 아무튼 할 수 있는 게 많다.

 

저녁에는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리조트에 한 번 들어 오면 마지막 날까지 리조트 밖으로 나갈 이유가 전혀 없다.

 

수영하다가 맥주 한 잔 마시고 드러누워 있다가 배 고프면 밥 먹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 있으면 가서 참여하고 아무 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정말이지 휴양을 위한 최선의 장소라 하겠다.

 

 

하지만…

난 이내 내 선택을 후회했다.

부페식으로 나오는 하루 세끼의 식사는 언제나 과식을 불렀고 덕분에 늘 불러 있는 배는 불편한 느낌을 줬다.

 

적당히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공짜로 널려 있는 상황에서 그 적당히가 잘 안 된다.

게다가 비싼 값을 치르고 들어 왔다는 생각에 본전 생각이 나서 술과 음식에 욕심을 내게 되더라.

 

차라리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하고 잘한다는 식당을 찾고 적당히 주문해서 맛있게 먹는 게 훨씬 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술도 마찬가지.

언제 어디서든 공짜 술을 마실 수가 있으니 하루 종일 취한 상태가 되더라.

해지는 저녁 아내와 둘이서 분위기 잡으며 오붓하게 한 잔이 아니라, 언제든 술이 있으니 그냥 술이 술을 마시는 그런 망해버린 분위기가 되더라는 거다.

 

해양스포츠를 비롯한 각종 액티비티도 마찬가지.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차피 공짜니까 눈에 띄는 대로 대충 해 보고 재미 없다 싶으면 그냥 다른 것 찾아 가는 경우가 생긴다.

너무 많은 걸 너무 쉽게 취할 수 있으면 그 어느 것도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사람마다 휴가를 즐기는 방법은 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 느낌은 온전히 내 개인적인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모든 게 공짜로 제공 되는 고급 리조트에서 별생각없이 과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며 지내는 경험은 휴가라기 보단 내 몸과 내 시간에 대한 학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클럽메드란 곳을 여러 번 다니다 보면 공짜라고 막 덤비지 않고 적당히 즐기는 방법을 체득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클럽메드는 너무 비싸다. (비수기에 인도네시아 사이트를 이용해서 예약하는 방법으로 내가 낸 금액이 평소의 반값이 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클럽메드는 비싼만큼 내게 너무 고급지고 많은 걸 주려고 했으나 난 그걸 즐기는 방법을 모르고 그냥 불편해할 뿐이었던 것 같다.

 

편하고 깔끔한 잠자리와 내가 찾아 가는 그 동네 맛집, 그 길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 그리고 이어지는 가족과의 여유로운 시간.

이게 내게 어울리는 여행이고 휴가다.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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