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여행을 가면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
남들 다 관광지로 떠나고 인적 별로 없는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 잠깐 한 뒤 가지고 온 책을 읽는 것 말이야.
난 여기 관광을 위해 온 게 아니라 쉬러 온 거라구. 훗 관광 따위...
비행기 시간이 애매해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체크아웃까진 시간이 있고 해서 오늘 드디어 그 꿈을 이뤘어.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 들어 가려는데 저기서 비키니 수영복 위에 헐렁한 티 하나 걸친 아름다운 여성이 걸어오는 거야.
한눈에 봐도 삼십대 후반 정도의 일본 여성.
그래, 이번 여행동안 제대로 된 만남 하나 없었는데 이 참에 추억 하나 만들어 보자.
내가 이래 봬도 우월한 기럭지에 군살 하나 없는 (배에 힘 주고 있으면 뱃살 표 안난다) 몸매, 그리고 잘 생긴 얼굴과 뛰어난 수영 솜....
아,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 싱가포르에 오기 전까진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고, 싱가포르에선 곳곳이 수영장이라 겨우 개구리 헤엄만 익힌 정도라 수영이라 할 수도 없지.
죽을 힘을 다해 최대한 우아한 자세로 수영장 한바퀴를 돌고는 마치 한참을 수영하고 이제 막 나가려던 참인 표정으로 물에서 나왔어.
그러자 샤워를 마친 그녀가 수영장으로 들어 갔어. 난 자리에 누워 슬쩍슬쩍 그녀의 수영 모습을 지켜봤지.
그녀의 전생은 분명 인어공주였을테고, 지금은 일본 수중발레 감독인 게 분명해. 이 작은 수영장을 온통 휘젓고 다니는 거야.
내가 수영장에서 나오길 기다린 건 나를 훔쳐본 게 아니라 내가 수영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던 거였어.
아..,
들고 있는 책이 눈에 안 들어온다.
이제 짐 챙겨서 가야겠어.
굿바이, 사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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