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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실수투성이 부부배낭여행 #08. 아이폰 인물모드가 이런 거였어?

전 날 늦게 도착해서 헤매느라 체크인도 하지 않아 아침 일찍 일어 나서 정식으로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 동네 한바퀴를 도는데 위치는 제일 좋은 곳이었다. 호텔 바로 앞이 그라나다 대성당, 투어 모임 장소도 바로 코 앞.......

투어? 맞다. 가이드 투어!

 

 

호텔 바로 앞이 그라나다 대성당 그리고 시장. 간단한 아침 산책이 그냥 관광이 되어 버렸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말 그대로 우리 부부만의 배낭여행이고, 대부분의 일정은 하루 전에 정해서 움직이는 걸로 했다. 그렇게 하니까 마음이 가는 곳에서는 좀 더 오래 머물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 조언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하고. 레알마드리드 축구 관람이 그렇게 즉흥적으로 이뤄진 거였다.

 

미리 정해진 건 마드리드 입국, 바르셀로나 출국 정도. 거기에 하나 더, 알함브라 궁전 투어. 여긴 3개월 전에 미리 표를 사지 않으면 못 들어 간다고 해서 미리 계획에 집어 넣었다. 그럼 뭐하나, 비행기 표 끊고 바로 알함브라 궁전 표를 구하려 시도 했음에도 표가 없는 걸.

 

그래서 순전히 알함브라 궁전 표를 못 구해서 선택한 게 여행사를 통한 가이드 투어였다. 단체로 여행 다니는 것 별로 안 좋아하고, 호주에서 경험했던 가이드 투어가 별로 만족스럽지 않아 이번 투어도 큰 기대는 없었다.
알함브라 궁전에 들어 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는 전망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런 풍경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투어는 좀 달랐다. 젊고 생기 가득한 가이드의 목소리는 거의 성우 혹은 연예인급이었다. 수신기를 통해 하루 종일 설명을 들어야 하는 가이드 투어의 특성상 가이드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12인치 아이패드를 이용해 필요한 사진과 동영상으로 이해를 돕는 것 역시 준비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건 이동 중이나 설명이 필요 없는 자투리 시간에 수신기를 통해 들려 주는 음악이었다. 수신기가 최신형인지 잡음없이 음질이 좋았고, 선곡은 순간 순간 상황에도 맞아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스페인 노래가 나왔다고 이러는 거 아니다.) 기술의 발달이 가이드 투어의 품질도 높이고 있었다.

 

중요한 포토존에선 직접 모든 참가 인원들의 사진을 일일이 찍어 줬는데 그 성의가 고맙고, 특히 사진 결과물은 프로의 솜씨였다.
참고로 난 아이폰X을 쓰는데 가까이에서 사진 찍을 때는 굳이 인물모드로 바꿔 좋은 사진을 찍어 내는 수고까지 하는데 감동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인물사진 모드로 찍은 사진. 이걸 이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거야.

 

 

점심 식사는 개별적으로 하는데 세 군데 정도 추천을 해 줬다. 가이드가 추천하는 식당은 대부분 관광객이나 가는 복잡하고 비싸고 맛없다는 게 상식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는 가이드 추천을 따라 보자 싶어 그 중 한군데 갔는데, 이번 스페인 여행 중 들린 식당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음식은 맛 있고, 종업원은 친절하고, 영어도 통하고, 심지어 간단한 한국어까지. 음식을 두 개 주문하려 하니 그 메뉴는 둘이 먹기엔 양이 좀 많을 거라며 하나만 주문해도 된다고 알려 주는 매너까지. 스페인 문어 요리가 내 입맛에 맞았다. 기분이 좋아 점심에 맥주도 한 잔 했다.

 

 

스페인 문어 요리가 내 입에 맞다. 가이드가 권해준 식당인데 제법 근사하다.

 

 

알함브라 궁전 투어를 마치고 마지막 헤어질 때까지 가이드는 열심이었고, 웃음과 친절을 잃지 않았다. 따지고 들자면 성향이 다른 스무 명 이상의 인원이 함께 움직이는데 부족한 게 왜 없고, 불편한 게 왜 없을까. 하지만 그 가이드의 정성이 그 모든 걸 다 상쇄하고도 남았다.

 

알함브라 궁전은 소문 대로 볼 게 많았다. 아니 많다기 보다도 하나 하나가 그냥 예뻤다. 궁전도, 정원도, 야경도…

함께 여행하는 이들과 쉽게 말을 텄는데 딸과 함께 여행 온 엄마는 20일 넘게 여행 중이라고 했다. 부부 여행도 좋지만 함께 여행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도 좋아 보였다.

 

내 아버지뻘 되는 할아버지가 라이카, 할머니는 캐논 바디에 커다란 렌즈를 붙여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처럼 아이폰 인물모드도 몰라서 못 쓰는 사람에겐 DSLR은 개발에 편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내가 돈이 없어서 DSLR 카메라를 안 사는 게 아니라구. 쿨럭.

 

 

여행 가면 다들 이런 거 한번씩 하고 그러지 않나?

 

 

 

이런 것도......

 

 

가이드 투어를 마치고 우리만 따로 산미구엘 성당 전망대까지 올라 갔다. 노을도 보고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도 볼 생각으로. 하지만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야 해서 힘들고, 화장실도 걱정되고, 저녁 먹을만한 곳도 없고 해서 사진만 찍고 그 아래 전망대로 내려 와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산미구엘 전망대까지 올라가면 또 다른 모습의 궁전을 볼 수 있다.

 

 

전망이 끝내주는 식당이었는데 전망만 좋았다. 음식도 별로고, 종업원들도 별로. 뜨내기 관광객을 대하는 전형적인 모습들이었다.
하몽에 맥주를 놓고 한참을 야경을 보다가 밤 12시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 왔다. 저녁이 좀 부실해서 숙소 가는 길에 발견한 중국식 마트에서 라면을 사서 끓여 먹고 잤다. 라면보다 더 훌륭한 음식이 또 있을까.

 

 

전망이 좋은 식당, 전망만 좋은 식당

 

 

오늘의 팁.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별다른 실수 없이 순조롭게 끝낸 하루였다. 아이폰X을 쓰면서도 인물사진 모드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그런 날이었고 (좋은 거 있어봐야 쓸 줄 모르면… 쿨럭)

알함브라 궁전은 미리 예약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가이드의 설명이 있으면 좀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전체 일정은 자유여행으로 짜더라도 여기만큼은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걸 권한다. 요즘은 가이드투어에도 후기가 많아서 잘 읽어 보고 선택하면 후회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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