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전 블로그

차이나타운의 주인들은 다 어디 갔을까?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차이나타운은 하나씩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인구의 75% 이상이 중국인인 싱가포르에도 차이나타운이 따로 있는 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중국에도 차이나타운이 따로 있을까?

 

아무튼 이번 여행은 차이나타운으로 가기로 했다. 워낙 여러 번 가 본 곳이라 딱히 기대할 건 없지만 세계 최초로 미쉐린가이드의 별을 받은 푸드코트 식당이 차이나타운에 있어 거기 가는 길에 겸사 겸사 차이나타운을 다른 눈으로 보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차이나타운 역에서 내려서 템플스트리트로 나가는 게 차이나타운을 찾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역에서 나오는 대로 보이는 옛스러운 건물과 그 건물들은 잇는 중국식 장식이 여기가 차이나타운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여느 차이나타운과 다를 것 없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만든 중국식 기념품 가게와 중국 사람들이 제사나 행사에 주로 쓰는 물건들을 파는 가게 그리고 푸드코트가 자리 잡고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차이나타운 헤리티지 센터인데 규모나 그 입구 장식의 조악함 때문에 굳이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들어 갈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대신 거리를 좀 더 걸어 보기로 했다. 차이나타운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마사지샵이 상당히 많은 데 그 중 상당수가 퇴폐영업을 함께 하는 곳이니 조심해야 한다. 게이를 대상으로 남자가 성적 자극을 포함한 마사지를 해 주는 곳도 있는데 그 입구에 무지개 깃발을 걸려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차이나타운에는 불교 사찰인불아사와 함께 힌두교 사원인 스리마리아만 템플, 이슬람 사원인 자마에 모스크가 나란히 있다. 다민족 국가라 서로 다른 종교의 시설이 서로 이웃하고 있는 모습을 여기 아니더라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종교와 민족에 대한 시비를 불러 일으키는 걸 가장 크게 처벌하니까 다들 주의.

 

스리마리아만 템플은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마리아만 여신을 모시는 곳이다. 사원 입구의 '고푸람' 이라 부르는 탑문은 (웅장한 탑문)은 신, 신화적인 짐승 및 여러 다른 존재의 조각물로 장식되어 있어 제벌 볼만하다. 입장은 무료지만 신발을 벗어 두고 들어 가야 하며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따로 돈을 내야 한다. (영수증 따윈 없고 입구에서 졸고 있는 인도인이 돈을 받는데 어째 좀 사기 같다)

 

불아사는 예배는 물론 박물관의 역할도 함께 하는 곳인데 4층 사리실에는 부처의 성치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방문했을 때 마친 예불이 진행 중이라 잠시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형식이 교회에서의 예배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어차피 종교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이제 차이나타운은 어지간히 다 봤으니 미쉐린가이드 별을 받은 치킨라이스를 먹으러 갈 차레다. 차이나타운 안에도 여러 푸드코트가 있고, 관광객들을 위해 거리 하나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푸드코트로 만들어 놨지만 역시 음식은 로컬 사람들이 즐겨 가는 곳에서 먹어야 제대로인 거다.

 

 

가게 이름은홍콩 소야 소스 치킨라이스 앤 누들” (이하 홍콩 누들) 인데 그 많은 식당 가운데서도 눈에 확 띄었다. 집 앞으로 길게 이어진 줄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다른 식당에 방해가 되는 바람에 줄을 벽쪽으로 따로 세웠고 순서가 되면 가게 앞으로 가서 주문을 하게 해 놨다.

 

어림잡아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겨우 주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포기했다. 줄이 길고 오래 기다려야 해서가 아니다. 1,700원짜리 치킨라이스 하나를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도 아니다.

 

이 곳의 치킨라이스는 2달러(1,700), 치킨 누들은 2.5달러, 닭 한마리를 다 주문해도 14달러로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서 더 싸다. 그래서 주변 상인이나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는데 미쉐린가이드 별을 받은 후 관광객들이 몰려 드는 바람에 평소 그 집의 단골들이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었단다.

 

치킨라이스는 양념을 살짝 한 밥 위에 삶은 닭고기를 올려 주는 아주 간단한 음식인데 이게 저렴하고 먹기에도 간편해서 노인들이 특히 즐겨 먹는 음식이다. 하지만 별을 받은 후 노인들은 도무지 두 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단다. 별 하나 때문에 단골들이 관광객에게 떠밀려 나간 것이다. 내가 그 관광객 중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사진만 찍고 자리를 떴다.

홍콩 누들 대신에 찾아 간 곳은 맥스웰 스트리트의 티안티안이었다. 여기 역시 로컬 사람들 사이엔 꽤나 알려진 곳이고, 미쉐린가이드의빕 그루망 (별 아래 등급)”에 소개 된 곳이라 관광객들도 몇 눈에 띄었지만 일하는 사람도 많고 식사 시간을 피해서 간 덕에 금방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접시 하나에 밥 한 그릇 그 위에 닭 몇조각 그리고 오이 한 조각이 전부다. ? 그냥 치킨라이스 맛이다. 오늘 뭐 먹을까 하다가 그냥 부담없이 시켜서 5분 안에 후다닥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서민 음식.

 

싱가포르에까지 관광 와서 굳이 두 시간씩 줄 서서 기다려 먹어야 할 대단한 그런 음식은 아니다. 아무 푸드코트에 가서 시켜도 비슷한 맛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음식이니 굳이 미쉐린가이드 별 받았다는 식당 가서 단골들 몰아 내면서까지 먹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미쉐린가이드 별이라는 게 그걸 받는 주방장 개인에게는 영광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이외에 또 어떤 사회적 효용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의 여러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소개하는 맛집 역시 마찬가지고. 별이든 방송이든 해당 지역에서 수 년에 걸쳐 나름대로 형성된 지역 음식점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게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삶에 또 다른 경험을 얻고자 떠나는 여행이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 방해가 되는 그런 여행은 아니어야 한다는 단순한 상식을 다시금 깨닫는다. 여행자는 떠나도 거기 사는 사람의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