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전 블로그

KTV에서 확인하는 요즘 삼사십대 자칭 386들의 컨셉

(2007/09/05)

 

KTV에 갔어요.
한국에서는 단란주점이라고 하는데 싱가포르에서는 KTV라고 불러요.
이름이야 어쨌건 그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접대부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 기기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는 건 똑 같아요.

싱가포르에 사는 한국 사람이 꽤 많아요.
공식집계로도 1만 6천명이 넘는다고 하고, 단기 체류나 관광차 와서 머물러 있는 분들을 포함하면 2만명을 훌쩍 넘는다고도 하네요.
그래서인지 몇몇 KTV에 가면 한국에서 가져 온 노래방 기기가 있어요.

외국에 나와서 한국 노래를 부르는 건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해요.
그래서 남자들끼리 모여서 술 한 잔 하다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면 KTV로 가기도 하죠.
하지만 워낙 비싸서 자기 돈 내는 경우라면 잘 안게 되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접대를 해야 하거나, 접대를 받게 되는 경우에 가는 경우가 많죠.

KTV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여자들은 중국에서 온 경우가 많아요.
싱가포르 국민의 80%가 중국계라서 그런지, 중국 여자들을 제일로 쳐 준다고 하더군요.
싱가포르에 공부하러 왔다가 학비를 벌려고 접대부 일을 한다는 여자들도 많아요.

말 안 통하는 여자 접대부와 술에 취한 한국 남자 손님들이 음침한 조명 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몇가지 없어요.
당신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지요.
그러다가 자기 순서가 오면 노래를 불러요.
한국에서 가져 온 노래방 기기에서 흘러 나오는 익숙한 곡조들.

삼사십대의 한국 남자들이 비지니스를 핑계로 KTV에 가서 어떤 노래를 부를까요?
자주 불려 나오는 가수들이 윤도현, 안치환, 김광석이예요.
가끔은 조하문이나 정태춘도 초대되는 경우가 있지요.
김수희나 조용필, 심수봉이나 태진아가 아닌 게 좀 뜻밖이라구요?
김건모, 신승훈, 이기찬을 더 자주 부르지 않느냐구요?

그들은 이른바 386이거든요.
지금의 삼사십대는 다수가 학교 다닐 때 운동에 관심이 있었건 아니건 스스로를 386이라고 규정을 해요.
도서관에 앉아서 시위하는 소리에 귀 막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에 짜증을 냈던 이들도 지금은 “나도 한 때는 짱돌 좀 던졌지”라는 말 한마디씩은 한답니다.

지금은 좌파란 말에 혐오감을 나타내고, 운동에 대해 반감을 나타내지만, 당시에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창피한 일일 수 있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거든요.
민주화 된 이후 봇물처럼 쏟아졌던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류의 프로그램이 지금의 삼사십대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알게 모르게 안겨줬던 거지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듣지도 불러 보지도 않았던 노래들을 이제사 부르는 겁니다.
당시엔 노래 하나 부르는 것 조차도 위험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위험하지 않거든요.
“한 때는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고, 지금은 이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정신차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게 요즘 삼사십대 자칭 386들의 컨셉입니다.

방금 전까지 옆에 앉은 접대부 가슴 속이나 사타구니 속을 더듬던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반주에 맞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릅니다.
분위기가 달아 오르면 다들 일어나서 어깨를 걸고 “광야에서”도 부릅니다.
함께 어깨를 건 접대부들은 영문도 모르고 심각한 표정을 짓습니다.
‘철망 앞에서’나 ‘귀뚜라미’, ‘저 창살에 햇살이’ 같은 노래가 나올 때도 있어요.

그 장면을 한번 떠 올려 보세요.
우습죠?
그 자리에서 직접 바라 보는 사람은 미칩니다.

비싼 양주를 병째로 들이키거나 접대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모른 채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한 때를 자랑하는 그 386들은 지금 경부운하를 뚫으면 건설경기가 살아나서 좋다며 건설회사 사장을 지지합니다.
전두환이 29만원 밖에 없다는 건 좀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박력있고, 아랫사람 챙길 줄 아는 건 인정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그러니 박정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건 당연한 거죠.

예, 그래요.
그들은 이 땅의 민주화 과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독재시절을 그리워 할 정도로 사회정의에 대한 아무런 개념조차 갖고 있질 못합니다.
그냥 한 때 운동에도 참여 했었다고 말하는 게 덜 쪽 팔리기 때문에 한 때를 말하고, ‘광야에서’를 부르며 어깨를 거는 겁니다.
비록 그게 접대부의 어깨일지라도 말입니다.
어차피 폼이니까요.

그래서 전 KTV에 가면 최성수를 부르고, 쿨을 부르고, 거북이를 부릅니다.
서수남과 하청일을 불러 내기도 하고, 임병수를 불렀다가 현철을 불러내기도 합니다.
함께 어깨를 걸지 않아도 되고, 괜히 비장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냥 반주에 따라 목소리만 키우면 되니까 부담이 없어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네요.
개나 소나 다 운동을 함께 했다고 우겨대는 그 ‘한 때’에 운동에 투신하여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결같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있잖아요.
남들이 그 ‘한 때’의 경험을 훈장 삼아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고 하는 동안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분들 말이예요.

KTV에서 한 손으로는 접대부 허리를 휘어 감고, 또 다른 한 손으로 마이크를 쥔 채 ‘솔아 솔아’ 불러대면, 현장에 계신 그 분들이 낯 뜨거워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요?
물론 ‘노래가 그 뿐이냐’라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비장한 표정이 아직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우습게 만들잖아요.

아,직,도, 현장에 계신 분들과 새로운 현장에 몸을 담으신 분들은 바빠서 그런 노래 부르는 것 자체를 사치로 여기실 수도 있어요.
그 분들은 남들이야 여자 몸 위에 자기 몸을 포개고 그 노래들을 불러도 상관치 않을 분들일 겁니다.
한미 FTA 반대의 현장에서,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농성의 현장에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맨 몸으로 뛰어든 현장에서 지난 노래 부르며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저 같이 한 때 운동을 한 적도 없어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부채감으로 사는 사람들은 386 또는 한 때의 운동 경력을 들먹이며 거드름을 피우는 이들을 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때의 운동 경력을 팔아 감투를 쓰는 분들이나, 없는 운동 경력을 들먹이며 KTV에서 민중가요를 부르는 분들이나 구토를 불러 일으키는 건 똑 같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이, 독재자에 빌붙었던 이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지금 세태가 구토를 불러 일으키는 이들 때문이 아닐까요?

운동을 했든 안 했든, 지금 운동을 하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그냥 염치가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다들 자기 앞가림에 바쁜 이들이지만, 남들 앞가림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분명 있거든요.
그들에게 감사하지 않아도 좋고,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좋지만, 그들을 조롱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잖아요.

KTV에 가서 실컷 잘 놀다 오고선 별 소릴 다 하죠.
이게 제게 남은 마지막 염치예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