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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리스 힐튼과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

(2007/03/15)

 

패리스 힐튼이라는 모델이 있다. 내 눈에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그녀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녀가 들고 있는 가방이 진짠지 가짠지, 그녀가 누구와 사귀는지, 그녀가 어떤 잡지에서 실렸는지, 그녀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한 때 우리나라 스포츠 신문들이 이효리 뒤만 쫓아다니며 기사를 쓰던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지난 2월 AP 통신은 1주일 동안 의도적으로 패리스 힐튼에 관한 보도를 자제했었다고 한다. 보도 자제의 이유는 "인터넷 상에서 끊임없이 가십 거리를 만들어 내는 인물에 대한 기사를 1주일 동안 쓰지 않는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호기심의 발로였다는 것이다. (자세한 기사 내용은 <미디어 오늘>의 관련 보도를 참조)

그 결과는? “AP통신과 제휴를 맺고 있는 수만 개의 언론사들 중, 어느 한 곳도 힐튼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힐튼에 대한 소식이 없어도 세상 돌아가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동안 부잣집 상속녀인 이슈메이켜 힐튼이 어떤 가방을 들고, 어떤 신발을 신고, 누구랑 잠자리를 하느냐 하는 뉴스는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신문과 방송을 팔아 먹기 위한 언론들만을 위한 뉴스였던 것이다.

올 해 들어 <오마이뉴스> 1면 톱기사에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소식이 한번도 없었던 날이 과연 몇일이나 될까? 내 기억엔 없다고 본다. (물론 오마이뉴스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른 신문들은 더 하다. 하지만 내가 시간을 내서 이런 잔소리라도 늘어 놓고 싶은 언론은 오마이뉴스 뿐이다.)

그 와중에 요즘은 손학규가 중대결심을 하니 마니 하는 시기라며, 아예 전담기자가 하루 종일 붙어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서라 말아라. 손학규의 중대결심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이명박과 박근혜의 지리한 말싸움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뉴스거리인가? 한나라당 대선주자에 대한 보도의 양만큼 민노당 대선주자에 대해 보도를 했다면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건 따 놓은 당상이다 싶다.

포털에서도 다른 언론에서도 수도 없이 반복되는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중계를 오마이뉴스에서 또 보고 싶지는 않다. 대신 울산과학대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만행, 하이닉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한미 FTA 관련 소식, 한반도에 불어 오는 따뜻한 바람… 이런 걸 보고 싶다. 가맹점 등 쳐 먹는 BBQ, 제주도에서의 잊혀진 참사 등 오마이뉴스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 사안에 대해 잡으면 놓지 않고 뿌리를 뽑는 오마이뉴스만의 근성이 한미 FTA 관련해서는 크게 와 닿지 않는게 사실이다. 대통령 탄핵 당시 노무현을 구해 내기 위한 노력의 10분의 1만 한미 FTA 관련 보도에 쏟았다면 상황이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 일주일만이라도 한나라당 대선주자에 대한 보도를 자제 해 보라. 꼭 필요한 뉴스가 있으면 연합 받아서 단신으로 처리해도 된다. 한나라당 당내 경선 시작하고 나서 해도 된다. 각 당이 대선후보 정해 놓고 선거전 시작 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그 쪽은 아예 신경 끄고 서민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 사안에 대해 집중해 보라.

오마이뉴스가 일주일간 한나라당 대선주자에 대해 눈 감는다고 해도 세상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일주일간 한미 FTA 에 두 눈 부릅뜨고 집중한다면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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