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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구름 위에서 내려 오시라.

(2017/08/09)

예전 직장 다닐 때 한동안 월급이 제 때 나오지 않거나 아예 반만 나오거나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규칙적인 음주를 거를 수 없어서 휴일이면 마트에 맥주를 사러 갔다.
맥주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맥주라도 차이가 커서 잘 골라야 했다.
 
보통은 중간 가격대이자 싱가포르 맥주인 타이거를 고르는데 그 당시에는 그 보다 좀 싼 창이나 싱하를 주로 마셨다.
그러다 좀 더 눈을 낮추면 타이거가 동남아 저가 맥주 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앵커를 고를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맥주 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첫 잔이나 좀 다를까 그 다음 부터는 뭘 마셔도 취해서 구분도 안 돼."
 
요즘은 일 하는 게 엿 같아서 그렇지 월급은 안 밀리고 제 때 나온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건방져져서 앵커나 창은 거들떠도 안 본다.
 
아직도 대부분의 경우 타이거를 고르지만 가끔 스텔라나 1664블랑을 고르기도 하고 미친 척 하고 에딩거를 고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마트에서 파는 맥주 그 얼마 차이 난다고 고민씩이나 해. 좀 비싸도 맛있는 걸로 먹고 차라리 다른 걸로 아껴."
 
지금보다 형편이 좀 더 피면 이렇게 이야기 하겠지.
"맥주는 역시 분위기 있는 아이리시 펍이나 마이크로 부르워리에서 생으로 마셔야 제 맛이지."
 
이렇듯 사람은 자기가 처한 형편에 따라서 이런 사소한 일을 앞에 두고도 전혀 다른 사고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말을 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와 대중의 거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법륜이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헛소리를 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중이다.
 
법륜의 글은 혼자 살면서 부르는데 많은 유명 종교인인 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도 틀린 데가 없다. (비정규직과 프리랜서를 구분 못하는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그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처지라 하루 하루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걸 법륜은 몰랐고 그 때문에 구름 위에서나 할 헛소리를 하게 된 것이다.
 
이건 법륜을 까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미리 주의를 주기 위해 하는 말이다.
 
언젠가 나도 형편이 필텐데 (쿨럭) 그때 맥주 한 잔 하면서 "캔 맥주를 무슨 맛으로 먹어. 맥주는 무조건 생이지." 따위의 말을 하지 않도록.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내가 서 있는 자리부터 확인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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