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9 18:28)
큰 딸 예경이가 호주 대학 입학 서류에 장애나 앓고 있는 병명을 적는 난이 있어서 거기에 갑상선항진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는 중이라고 썼다.
그랬더니 시험 기간만 되면 이메일이 온단다.
필요하면 다른 사람에 비해 시험 시간을 연장해 주겠다는.
장애가 있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시간이 더 필요한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공정한 시험이 가능하게 배려 하는 것이다.
예경이는 호르몬 때문에 10년째 약을 먹고 있긴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늘 메일을 무시했다.
그런데 이번에 좀 특별한 메일을 받았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특별히 마련된 인턴 자리가 있는데 지원해 보라는.
호주는 겨울방학이 3개월로 길어서 그 기간 동안 인턴 일을 많이 하는데 예경이도 지금 인턴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물론 예경이는 지원하지 않았다.
남의 나라에서 알바해 가며 어렵게 유학생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이 아니면서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를 낼름 가로챌 만큼 염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
사실 이런 게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 조직은 장애인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배려를 하고, 비장애인은 거기에 기꺼이 협력함으로써 장애가 불편하기는 해도 불행한 건 아닌 그런 사회가 문명사회다.
예경이가 공부하고 있는 남의 나라 호주 말고 앞으로 살아 가야할 내 나라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서울 강서에서 장애인 교육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이 지역 주민의 반발로 지연 되고 있다.
애초에 다른 곳에 지으려 했으나 그 지역 주민의 반발로 학교 부지인 지금의 장소를 정했는데 여기서도 반발이 심해 장애학생의 부모들이 공개 토론회에서 무릎을 꿇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교 부지에 학교를 짓는데 주민토론회가 필요하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장애인 학교가 아니라 체고나 예고, 과학영재고 같은 걸 지어도 토론회가 필요하고 주민들은 반대를 할건가?
사실 토론회가 필요하긴 하다.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면 주변 도로에 장애인이 드나드는데 방해가 되는 건 없는지, 주변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는 설치되어 있는지, 주민들이 장애인 교육에 대해 특별히 알아야 하는 건 없는지 등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있어야 한다.
장애인이라고 특별히 어마어마한 혜택을 주자는 게 아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를 하자는 거다.
최소한 공평한 기회는 보장 하자는 거다.
장애인 교육을 일반 학교에서 감당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별도의 학교를 만들어서 동등한 교육 기회를 갖게 하는 게 옳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국가와 사회의 의무다.
장애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가 주변 집값이 떨어질까 봐 그러는 거란다.
거기에 허준의 이름을 딴 한방병원을 지으면 동네가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란다.
평생을 아픈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을 한 허준이 자신의 이름을 딴 병원 지어 잘 살아 보겠다는 이들 때문에 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이 상황을 알면 무덤에서도 곡을 하지 않을까?
호주가 한국보다 선진국인 건 나라에 돈이 많아서도, 땅이 넓어서도, 캥거루와 코알라가 살아서도 아니다.
남의 나라에서 온 유학생의 사소한 장애까지 살피며 배려하는 그 시스템 때문에 선진국인 거다.
난 내 나라도 그런 선진국이 되길 바란다.
장애인 학교 몰아 내고 거기에 병원 지어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런 저렴한 나라는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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