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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호주, 비자 없이 가려고 했었다.

몇해 전 호주에 처음 갔을 때의 이야기다.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해서 발권을 하려는데 직원이 비자가 없어서 발권이 안 된단다.

난 한국 사람이라 비자가 없어도 될 거라고 했더니, 그런 참신한 개소리는 처음 듣는단다.


부랴 부랴 확인 해 보니 ETA 라 부르는 전자 관광 허가 비자가 필요하단다.

비행기 표는 샀고, 비행기는 두 시간 후에 출발 하는데 우린 비자가 없는 그런 상황이다.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 직원이 비자 신청 대신 해 주길 바라느냐고 묻는다.

출발까지 두 시간도 안 남았는데 이제 와서 비자 신청이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호주 비자는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보통 신청 후 30분 안에 승인이 나기 때문에 아직 늦지 않았단다.


예전에 미국 비자를 받을 때 (스무 해도 더 전에 여권에 비자 붙여 주던 시절)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했고, 중국 비자의 경우도 신청 후 사나흘이 필요했던 기억만 있던 내게 인터넷 신청에 신청 후 30분 내 승인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서 빨리 신청을 해 달라고 하니 직원이 신청을 대신 해 주면 수수료를 따로 받는다고 했다.

여기서 잠깐, 직원은 분명 “대신”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직접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아.

한 명이면 급한 김에 부탁하겠는데 우리 가족이 네 명이라 수수료가 만만찮았고, 마침 가방에 노트북이 있었기에 일단 내가 먼저 해 보겠다고 했다.


절차는 생각 보다 간단했다.

호주 비자 신청 사이트에 접속 후 필요한 정보 넣고, 수수료 납부를 위해 카드 번호만 넣어 주면 됐다.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10분 만에 네 명의 정보를 입력하고 승인을 기다린 지 15분 만에 승인이 됐다는 화면이 떴다.


여기서 잠깐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 사정을 떠 올려 보자.

외국인이 한국 정부 사이트에 접속해서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결제까지 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엑티브엑스와 각종 보안 프로그램 설치하는 데만 20분 이상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건 그냥 잠꼬대다.

IT 강국은 IT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조차도 IT를 활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 그런 나라를 말하는 거다.

아무튼 그렇게 비자 발급을 받고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 때 처음 호주에 다녀 온 예경이는 몇 해가 지난 후 호주에 있는 대학에 들어 갔고, 싱가포르 이민 생활에 더해 호주에서의 유학생활까지 하게 된 거다.

여행은 시드니와 멜버른으로 다녀 왔는데, 학교는 퍼스로 간 게 함정.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유학생활이 이제 다음 주면 끝이 난다.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된 거다.

퍼스에 혼자 보내 놓고 이제껏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는데, 졸업식에는 참석해야겠다 싶어 다음 주에 다시 호주로 간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리 비자도 발급 받았다.

숙소는 에어비엔비로 예약을 했고, 렌트카도 내일쯤 예약할 예정이니 준비는 얼추 끝났다.

이번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다녀 왔으면 좋겠다.

아니 문제가 있어도 잘 해결할 수만 있으면 그게 더 재미도 있고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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