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 여행 사흘째, 이제서야 겨우 여행다운 여행을 하게 됐다.
퍼스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로트네스트 섬으로 가기로 했다.
로트네스트 섬은 자전거를 타고 섬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며 해변에서는 수영과 보트를 즐기는 작은 휴양섬이다.
조용하고 예쁜 프리맨틀 거리를 걸어서 페리터미널로 간다
페리는 퍼스에서도 제일 예쁜 곳으로 꼽히는 프리맨틀에서 타는데, 숙소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휴일에는 24달러 티켓을 구입하면 두 명이 기차와 버스를 하루 종일 탈 수 있기 때문에 우린 티켓 두 장을 사서 넷이 대중교통만 이용해서 돌아 다니기로 한 거다.
프리맨틀에서 페리를 타고 로트네스트 섬에 도착한 다음 자전거를 빌렸다.
그게 고생의 시작일 줄이야.
로트네스트 섬은 예쁘고 자전거 길도 잘 되어 있지만, 한 여름 (12월은 남반구에 있는 호주의 여름이다) 태양은 뜨겁고 그걸 피할 그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전거를 탄 지 두 시간 만에 우리 넷은 모두 탈진, 게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 (내가 좀 많이 길치다) 갔던 길을 돌아 나오는 바람에 더 힘들게 느껴졌다.
로트네스트 아일랜드에서 오직 자전거만 허락된다
핑크빛 감도는 호수에서 이런 장면도 연출하고
로트네스트에만 산다는 쿼카. 사람에게 먼저 다가 온다. 야생성을 잃어 버렸단 이야기
물론 섬 자체는 좋았다.
평소 접해 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풍경, 곳곳의 호수와 해변, 그리고 그 섬에만 산다는 쿼카라는 귀여운 동물과 만나는 재미까지.
다만 태양을 피할 방법을 준비했다면 좀 더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었을 거다.
섬 전체가 휴양지다 보니 남자들은 수영팬티만 입고, 여자들은 비키니만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아내와 딸 둘 데리고 여행 다니는 나는 적잖이 민망했다는 건 비밀.
바다는 누구라도 뛰어 들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맑고 잔잔하고 그 푸른 빛이 눈부셨다.
섬에서 나온 후에는 프리맨틀 시장에 가서 군것질도 하고 시내를 돌아 다니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프리맨틀의 유명한 수제 맥주집에 바로 가기에는 시간이 좀 일렀으니까. 쿨럭.
시장 안에는 소소한 기념품과 음식들을 팔았는데 사지 않고 둘러 보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시장 안에 한국 음식 파는 가게도 있어 닭강정 하나씩 들고 돌아 다녔다.
저녁 시간에 맞춰 수제 맥주집인 리틀 크리에이춰스 브루어리에 들렀다.
소문에 의하면 맥주는 맛있고, 음식은 정갈하며, 바다로 지는 석양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 곳이다.
대규모 맥주 제조 공장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흥미롭고, 맥주 자체는 맛이 있었지만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았고 워낙 사람 많고 어수선한 곳이라 딱히 권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난 수제맥주집을 찾는다. 여기는 그냥 보통 수준.
프리맨틀 여행의 백미는 인도양으로 지는 석양을 보는 일
석양은 그 맥주집에서 나와 바닷가로 좀 나왔을 때 훨씬 예쁘고 제대로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낮에는 그렇게도 괴롭히던 태양이었는데, 바다 너머로 사라질 때는 또 사람 기분을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퍼스에서 바라 보는 바다가 인도양이라는 사실을 그 때 기억해 냈다.
인도양으로 지는 태양...
그걸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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