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러더라.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권 같은 건 없다고.
그냥 읽고 싶은 책과 읽고서 즐거운 책만 있는 거라고.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 되도록 어느 특정한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혼자 부끄러운 책이 좀 있어.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그 중 하나야.
단편 소설이라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금방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이상하게 이제까지 그런 기회가 없었어.
그러다 이번에 며칠 쉬는 동안에 읽었어.
이미 극상찬을 받은 이 소설에 대해 나 따위가 따로 평가를 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본문에 나오는 “수음”이라는 단어에 굳이 “스스로 생식기를 자극하여 성적 쾌감을 얻는 행위”라고 주석을 달아 놓은 게 좀 인상적이라 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작가가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출판사에서 여러 옛 단편을 모아 책을 내면서 지나치게 친절하게 주석을 단 것 같아.
어쨌든 남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 “안개”란 단어가 오래 가슴에 박힌다던데, 난 불경하게도 “수음”이란 단어만 머릿 속에 남아 있어.
주인공 윤희중이 무진에서 만난 하인숙을 생각하며 혼자하는 수음이 바로 이 소설이란 생각이 들어.
벗들도 한번 읽어 봐.
나만 이런가 궁금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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