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전 블로그

눈에 보이는 폭력,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2007/01/09)


4년 전 오늘은 두산중공업 노동자 였던 배달호씨가 분신자살을 한 날이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그는 유서를 통해 그의 죽음이 두산중공업이 자행한 노조탄압과 거액의 손배소 소송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밝혔다. 회사는 '무식하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노조의 행사장에 난입하여 소화기를 분사하거나, 의자를 걷어차지도 않았다. 다만 노조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목숨을 내 놓지 않는 한 갚을 수 없는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을 뿐이다. (정주영 이후로 기업들이 드러내 놓고 칼잡이를 고용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사측의 성과급 지급 약속을 지키라며 실력행사를 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폭력을 썼기 때문에 노조가 잘못했단다. 갑돌이와 을식이가 서로 말다툼 하다가 주먹에 자신이 있는 갑돌이가 을식이를 두들겨 팼다면 그건 폭력을 쓴 갑돌이의 잘못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한 관계만 있는 게 아니다.

두산중공업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배달호씨를 죽였다. 겉으로 보면 두산중공업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도 감당키 어려운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배달호씨는 두산중공업이 저지른 폭력에 분신으로 맞섰던 것이다. WTO 농업개방 반대를 외치며 멕시코에서 죽음을 택한 이경해씨는 국가가 저지른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희생된 경우다.

한 남자 연예인이 며칠 같이 살지도 않은 여자 연예인을 때린 사실이 그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킨 데는 그 여자 연예인의 부러진 코와 부풀어 오른 뺨이 한 몫을 했다. 눈에 보이는 폭력은 이처럼 쉽게 드러나고 단죄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그 원인을 밝히기 어렵지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

국가와 기업은 폭력을 행사하지만 합법적(그들이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조종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으로, 기술적으로 한다. 거기에 맞서는 국민과 노동자들은 그들만큼 영악하지 않기 때문에 '무식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시무식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분명 노동자들이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폭력을 유발한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과연 없었을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CNN으로 방영된 화면 속 모습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게임 속 한 장면에 가까웠다. 이라크 내에서 산발적으로 저항이 일어났다. 그들은 박격포를 쏘고, 총을 쏘고, 돌멩이를 던지고, 미국 국기를 불에 태웠다. 사람들은 백악관에 있는 부시 보다 미군차량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17살 이라크 청년을 더 폭력적이라 이야기 한다.

눈에 보이는 폭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그걸 가려내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다음 희생자는 바로 나 일 수도 있다. 자주 인용하는 바람에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 세상이 식상한 곳이라 어쩔 수 없이 한번 더 인용한다.

[가진 자, 누리는 자들이 기득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쓰는 물리적 힘을 폭력이라 하고, 빼앗긴 자, 짓밟힌 자들이 자위를 위해 쓰는 것은 - 그것이 설사 폭력의 형태로 비친다 할지라도 - 폭력이 아니라 정당방위라고 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