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25)
영화 ‘괴물’의 싱가폴 개봉일이 9월 7일이란다.
그 날 싱가폴의 모든 한국인들을 다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다들 기대가 크다.
최단 시간 1000만 관객 돌파, 5주 연속 예매율 1위,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관객 기록은 시간 문제
다들 왜 그리 괴물에 열광하는 걸까?
난 영화를 본 1000만이 넘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비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억지 좀 부리자.
다들 미국이라는 괴물에 맞서 대항할 용기가 없어서 영화 괴물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 뿐이다.
다들 알다시피 괴물은 반미영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군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와 미선이의 이야기다.
교복을 입은 채 괴물(미군의 독극물로 인해 돌연변이한)에게 잡혀 간 ‘현서’를 보고 미군의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와 미선이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괴물이 아니라 현서 가족을 격리하는 영화 속 우리 정부나 살인을 저지른 미군 병사 하나 구속시키지 못하는 현실의 우리 정부나 별반 다르지 않다.
괴물을 두고 한국식 가족영화라 우기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차라리 남북 병사가 힘을 합쳐 미군 비행기와 전투를 벌이는 웰컴 투 동막골을 두고 반미영화가 아니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그건 반전영화라고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가족영화라 우기는 것은 영화 포스터에 ‘반미’라고 써 붙일 용기가 없는 제작자와 대 놓고 반미영화를 보러 갈 용기가 없는 다수의 한국인을 위한 임기응변일 뿐이다.
학교 다닐 때 한강에서 괴물을 본 뒤 언젠가 괴물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는 감독의 말은 한마디로 개수작이다
그냥 솔직하게 제대로 된 반미영화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해도 된다
아무튼 대한민국에 사는 1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제대로 만든 반미영화, 아니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에 대한 영화를 봤다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어야 옳다.
4년 전 별 성과 없이 막을 내렸던 촛불집회가 다시 열린다든지, 미국으로 도망가 버린 미군병사의 소환과 처벌을 요구한다든지, 조지부시의 사과를 촉구하기 위한 서명운동이라든지 아무튼 뭔가 성과가 있어야 했다.
방송에서도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에 대해 다시 되돌아 보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신문들도 사설을 통해 두 여중생의 죽음 이후 달라진 게 뭐가 있는 지 되짚어 봐야 했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게 한국 영화 한 편이 1000만명이나 끌어 모으는 게 옳으냐 그르냐 하는 걸로 100분 토론 한 번 한 게 다란다.
되려 “이제는 당당하게 '친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까지 있다고 한다.
1000만명이 넘게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에 대한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분노를 품지 않는다.
하긴 그들이 죽던 날에도 월드컵 광풍에 휩쓸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쳤으니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내 동생이, 내 딸이 괴물에게 잡혀가지 않은 걸 안도하는 수 밖에.
그래서 비겁하다고 하는 거다
괴물에 맞서지는 못하고 단지 괴물과 맞서는 현서 가족에게 심적으로나마 동조하는 것으로 가슴 한 구석 죄책감을 떨어 내려는 그 수작들이 비겁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9월7일 싱가폴 개봉일에 맞춰 극장에 가는 것으로 내 할일 다했다고 생각할 게 뻔하다
대추리에서 제2의 효순이와 미선이가 나올 게 뻔한데도 결국 대추리를 저들의 손아귀에 넘겨주는 데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이처럼 비겁하게 사는 한 ‘괴물’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것이다.
한강에서, 용산에서, 대추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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