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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 중국 연수 체험기 4. - 백두산 천지를 망쳐 놓은 중국인들

현대 현정은 회장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북한 땅을 통한 백두산 관광길을 열었다는 발표를 하던 그 날, 공교롭게도 난 중국을 통해 백두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연길에서 세 시간 남짓 차를 달려 백두산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불렀다) 입구에 다다랐다. 백두산 입장료를 내고 얼마를 더 올라 가니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고, 거기에 지프형 차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버스를 내려 지프로 갈아탔다. 백두산 정상까지 길이 나 있었다. 산 허리에 난 그 구불구불한 길이 꼭 내 허리에 상처를 낸 것만 같았다. 지프는 서울의 총알택시보다 더 험하고, 더 빠른 속도로 산을 올랐다.

 



이십분 가량 올라갔을까? 산 꼭대기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 불과 50미터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다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이 한낱 주차장에 불과하다니. 관광객들은 편하고, 중국인들은 쉽게 돈을 벌겠지만 백두산은 그만큼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몇 발 걷지 않았는데 천지가 눈에 보였다. 한겨레신문 창간호에는 백두산 천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을 처음 볼 때부터 언젠가 한번 꼭 가봐야지 했던 백두산 천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사진 그대로였다. 넓고, 깊고, 고요하고, 평화롭고….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여기 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런 저런 감상에 빠져 있는데 귀에 거슬리는 서툰 한국말이 들려왔다.

“와이드 사진 찍으세요. 기념품 팔아요. 싸다 싸….”

천지 주위에 진을 친 중국 잡상인들이 호객하는 소리였다.
관광객 사이를 휘저으면서 고함을 질러 대는 바람에 적잖이 짜증이 솟아올랐다.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인물이 좋아서인가(^.^), 날씨가 좋아서인가 사진이 꽤 잘나왔다.

가파른 길을 따라 천지 수면으로 내려갔다. 키 높은 나무들은 없었지만 곳곳에 핀 야생화들이 함께 동행해 주었다. 가는 길에 커다란 시내가 놓여 있었다. 다리는 물론 없다. 갈 길이 막막한데 저 멀리서 다시 서툰 한국말이 들렸다.

“삼천원, 삼천원”

중국인들이 고무보트를 하나 띄워 놓고 시내를 건너는데 한 사람 당 삼천원을 받고 있었다. 시내의 폭은 불과 1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얕은 곳을 골라 그냥 건너기로 했다. 삼천원도 아깝지만 중국인들의 그 얌체 짓이 얄미워서 도저히 돈을 보태 줄 수가 없었다.
 


바지를 걷고 시내를 건넜다.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고, 무척 차가웠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우리가 시내를 그냥 건너는 모습을 본 다른 관광객들도 보트 대신 시내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천원, 천원”

중국에서는 (나중에 소개할 북경이나 상해도 마찬가지다) 정가라는 게 없다. 순간 순간 부르는 값이 다 다르다. 장뇌삼 한 뿌리에 처음엔 3만원을 달라고 하던 게 차가 출발할 때 쯤이면 3천원까지 떨어진다. 한 개 천원하던 부채는 다섯 개 천원으로, 5만원 하던 짝퉁 롤렉스 시계를 5천원에 산 일행도 있다.

아무튼 천지 수면까지 내려 갔다. 정상에서 본 천지와 수면에 발 담그고 본 천지는 또 달랐다.

하지만 차라리 내려 가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었다. 물론 중국 장사꾼 때문이다. 천지 수면에까지 허름한 텐트를 쳐 놓고 삶은 계란과 컵라면을 팔고 있었다. 또 한 곳에서는 매대를 차려 놓고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즉석 사진을 찍으라는 사람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다들 중국인이지만 한국말을 곧잘 했다. 흥정도 익숙했다. 천지에 오는 관광객은 거의 다 한국인이라는 증거다. 천지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대충 지은 재래식 화장실이 천지와 이어져 있었고, 곳곳에 깨진 병과 음식물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누군가가 관리를 하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천지 바로 앞에 한자로 천지라고 적어 놓은 비석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곳에 몰리자 돈을 내라고 한다. 자기들이 세워놓은 비석이니 거기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옆에 혐오스럽게 생긴 괴물상이 하나 있었다. 백두산 천지의 괴물이라면서 거기서도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민족의 영산이지만 중국인에게 백두산은 그냥 좋은 돈벌이에 불과했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편 후 자본주의의 가장 천박한 것들만 중국 인민들에게 유입된 것 같다.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무겁고 답답한 마음만 잔뜩 안은 채 천지에서 송화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백두산을 내려왔다. 얼마 가지 않아 우렁찬 물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폭포가 눈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장백폭포였다. 물론 우리는 백두산 폭포라고 불렀다.

조금 더 내려오면 백두산에서 온천이 솟아오르는데 그 온천물에 삶았다며 계란을 판다. 허기진 배를 달래려 하나 집었지만 입맛이 쓰다. 땀 좀 닦고 가자며 들린 온천은 70년대 우리나라 동네 목욕탕보다 더 시설이 열악했다. 샤워만 대충하고 바로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 주고 들어가라고 해도 망설여 질 정도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오를 수 있게 된다.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중국인들이 이미 백두산의 절반을 망쳐 놓았다. 우린 부디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백두산, 아니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자는 말이다. (계속)

 

(200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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