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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첨삭

한국의 "방역패스"가 엄격하다고? 잘 모르시는 말씀

지난 1 15 YTN "우리나라 방역패스, 해외보다 덜 엄격하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국내 방역 조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을 "팩트체크"했습니다. YTN의 결론은 "전체적인 방역 규제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덜 엄격하다거나, 통제가 낮은 나라라는 정부의 설명은 대체로 틀린 내용"이라는 거였습니다.

 

청와대가 인용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연구팀의 나라별 '방역 엄격성'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최하위가 아닌 91위로 중위권이라는 것과 "전 세계에서 방역패스를 적용한 나라는 10개국 정도이며 백신 접종률이 80%가 넘었는데 방역패스 제도를 시행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덴마크뿐"이라는 걸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방역 규제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보도였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방역패스로 인해 불편을 겪는 대중의 불만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보도 내용 중에 "백신 접종률이 80%가 넘었는데 방역패스 제도를 시행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덴마크뿐"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도가 나간 1 15일 기준으로 싱가포르는 백신 접종률이 88%, 부스터샷 접종률도 53%가 넘는데 진작부터 방역패스를 적용해 온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팩트체크의 근거로 내세운 사실이 틀렸으니 제대로 된 팩트체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인 방역 규제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덜 엄격하다거나, 통제가 낮은 나라라는 정부의 설명은 대체로 틀린 내용"이라는 YTN의 팩트체크는 "대체로 틀린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싱가포르는 어떤 식으로 방역패스를 운영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모든 국민이 휴대폰에 트레이스 투게더라는 앱을 설치해서 백신접종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휴대폰이 없는 어린이나 노인을 위해서는 토큰이라고 부르는 별도의 단말기를 나눠 줘서 확인합니다. 아래 그림은 백신 접종을 한 사람만 출입이 가능한 곳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식당에서는 백신 접종 가능한 사람만 식사가 가능하고 함께 앉을 수 인원도 다섯 명으로 제한합니다. 쇼핑몰과 극장은 물론이고, 행사장, 공연장, 도서관, 박물관 등도 백신 접종자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결혼식이나 종교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은 사람이 위의 장소에 가려면 동네 의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한 후 당일 발급 받은 음성 확인서를 지참해야 합니다.

 

특히 유의해서 볼 것은 그림 마지막에 표시된 '워크 플레이스', 즉 직장에도 백신 접종 완료자가 아니면 들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면 재택근무를 하든지 아니면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두 달 이상의 계도 기간을 거쳤고, 오는 2 1일부터는 음성 확인서도 소용이 없습니다.

 

외국에서 비자를 받아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않으면 비자 재발급이 제한됩니다. 싱가포르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백신접종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고 해서 직장 안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인원의 50%는 여전히 재택근무를 해야 합니다. 출근을 하는 직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신속항원검사(ART)를 스스로 실시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아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한 사람을 두 군데 이상 교차 배치하여 일을 하게 하는 건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면 회의는 모두 화상 회의로 전환되었습니다. 직원의 출근 시간을 둘로 나눠서 절반은 30분 일찍 출근하고 나머지 절반은 30분 늦게 출근하게 해서 함께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구내식당이 있는 경우에도 한 테이블에 두 명까지만 앉을 수 있는 등 직원들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직장이나 공공장소가 아니라면 방역 관련 규제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집이든 야외든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이 모이는 건 다섯 명까지로 제한됩니다. 개인이 집에서 맞을 수 있는 하루 방문자를 다섯 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거나 교습을 받을 때도 한 그룹당 인원은 다섯 명까지입니다. 호텔 스위트룸이든 럭셔리 리조트든 숙박시설의 객실 하나에 들어 갈 수 있는 인원 역시 다섯 명까지로 제한됩니다.

 

한국의 언론들이 1년 전부터 위드코로나의 대표적인 국가로 보도했던 싱가포르의 지금 규제 상황이 이렇습니다. 1 15일 현재 싱가포르의 일주일 평균 확진자 수는 883명으로 인구 백만 명 당 178명입니다. 규제가 싱가포르 보다 덜한 한국의 경우 인구 백만 명 당 확진자 수는 77명입니다.

 

한국의 방역 성과를 싱가포르하고만 비교하지 말고 OECD 국가 안에서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인구 백만 명당 일일 평균 확진자 수는 이스라엘이 4429명으로 가장 많고, 천 명이 넘는 나라만도 24개국이나 됩니다. 한국은 OECD 국가 38개국 중에서 37번째입니다. 우리 보다 확진자 수가 적은 나라는 11명의 뉴질랜드뿐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체감하는 방역 규제 수준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방역 규제 정도는 전체적으로 덜 엄격하고, 통제가 낮은 나라인 것 같은데 이 정도 수준에서 확진자 확산을 억제하고 있는 걸 보면 현장에서 방역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만 보면 방역조치는 갈수록 심해지는데 코로나 확산은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라 밖에서 조금만 넓게 바라보면 한국의 방역 성과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K방역'의 역량과 방향에 신뢰를 가져도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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