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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념대로 찍어라.

(2007/12/16)

이명박이 BBK 실소유주란다.
함도 나오고, 증인도 나오고, 서류도 나오고, 이젠 결국 이명박이 자기 입으로 직접 이야기하는 동영상까지 나왔다.
눈 앞에 갖다 줘도 증거를 찾을 수 없다던 떡찰, 아니 검찰은 이번에도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수사를 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이명박이 BBK 실소유주라는 사실은 이제 온 국민이 다 안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다.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 찍겠다는 사람들, 이제까지 이명박이 거짓말 하고 있다는 걸 몰라서 찍겠다는 것 아니었다.
이명박이 거짓말쟁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여성비하 발언, 장애 관련 발언, 노동 관련 발언 등 입만 열면 터져 나오는 그의 천박한 사고에 대해서도 알면서 모른 체 할 뿐이다.
그가 기업할 때 저지른 각종 불법, 탈법 행위들, 그가 서울 시장 하면서 저지른 각종 이권 개입 행위들, 그리고 정치하면서 저지른 불법 행위들에 대해서도 알만큼은 다 알고 있다.
이명박 찍겠다는 사람들은 이명박의 도덕성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강남 부자들은 이명박이 자기 편 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찍는다.
땅 부자들은 이명박이 집값 땅값은 올리고, 세금을 깎아 줄 것을 기대하고 찍는다.
없는 사람들은 부자들이 잘 살아야 곁불이라도 쬘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찍는다.
보수성향의 사람들 (일명 수구꼴통이라 불리는 이들)은 한나라당 후보라서 무조건 찍는다.
경상도 사람들은 그가 경상도 출신이라 찍는다. (지역감정을 들먹이는 게 아니라 이게 부인하기 힘든 실제 상황이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기업가편 들어 줄 거라 생각하고 찍고, 장사하는 사람은 경기 살아 날 거라 기대하고 찍는다.
조중동만 보는 사람은 이명박이 구세주라 여기고 찍는다.
교회 다니는 이들은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하자는 맘에 찍는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여론조사에서 그가 대통령 될 거라 그러니 될 사람에게 몰아 주자며 찍는다.

이명박을 찍는 이들은 위에 언급한 대로 각각 자기 위치에서 적합한 이유를 들어 이명박을 찍는다.
그럼 사상 최악의 후보 이명박과 맞서는 후보들은 어떠한가.
정동영을 찍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끔찍하니까.
미안하지만 그것 말고는 마땅히 떠 올릴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정동영 대통령이 현실이 될 수 없는 거다.
권영길과 문국현은 그나마 몇가지 이유가 있다.
다만 당선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표가 몰리지 않는다.
엿같은 현실이며, 결선투표제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동영과 문국현의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 이명박 대통령은 용납이 안 되니까.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막기 위해 이회창까지 끌어 안고 단일 대오를 형성해야 하나.
이명박 대통령만 아니면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건가.
문국현은 자신을 범여권으로 묶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이명박을 반대하면 다 범여권이라면, 이회창도 이인제도, 권영길도 심지어 허경영도 다 범여권이다.
웃기지 않는가.
역대 대통령 이름을 대충 떠 올려 보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만 끔찍한 게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선거는 대통령을 뽑는 행위가 아니다.
선거는 나의 이념적 정치적 좌표를 드러내는 것이며, 나와 같은 좌표에 있는 이들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 나라에 수구꼴통이 얼마나 되고, 보수가 얼마나 되며, 중도는 또 얼마, 진보는 또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드러내는 행위란 소리다.
수구꼴통의 수가 제일 많으면 그 대표자가 대통령 하는 거다.
수구꼴통의 대표자가 대통령을 하지만 진보의 수가 1만인 것과 100만인 것은 향후 5년간의 정치 행위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1만은 투표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100만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각 정당들은 그 100만을 자기 편으로 삼기 위한 정치를 할 것이다.
당선 가능성이 없는 정당이 후보를 내고, 그 후보에 기꺼이 표를 주는 이들의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원하는 이들은 그의 흠결에는 눈 감고, 그의 없는 장점까지 만들어가며 찍는다.
정동영 대통령을 원하는 이들도 그렇게 하라.
다만 권영길 대통령, 문국현 대통령을 원하는 이들에게 정동영 대통령, 아니 반이명박 대통령을 강요하지 마라.
노무현과 이회창이 박빙의 승부를 벌일 때, 정몽준이 노무현에게 등을 돌렸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원했던 이들은 권영길 대통령을 원하는 이들에게 표를 빌렸다.
그 표를 갚을 생각은 커녕, 이번에도 또 다시 빌려달라고 하는 건 염치 없는 짓이다.

선거 결과 정동영을 지지하는 이들이 20%, 문국현을 지지하는 이들이 20%, 권영길을 지지하는 이들이 20%로 나오고 이명박이 30%의 지지율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치자.
범여권 단일후보 아무개가 31%의 지지로 30% 지지의 이명박을 꺾고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백 배는 나은 결과 아닌가.
향후 5년을 수구꼴통에게 인질 잡힌 5년이라 생각하고, 5년 후 되찾아 오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말 하는 나 역시 이명박 대통령은 꿈에 볼까 두려운 모습이다.
이명박이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얼마나 망쳐 놓을 지 걱정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우린 정치가도 아니고 정치 평론가가도 아니다.
정치 공학을 논하기 전에 내가 가진 한 표를 충실히 행사하는 게 중요하다.
그 한 표가 헛되이 사용되지 않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냥 이념대로 찍어라.
수구꼴통들은 자기 이념에 충실한데, 왜 우리만 늘 정치공학을 논해야 한단 말인가?
자기 이념대로 찍는 게 더뎌 보이고, 갑갑해 보여도 결국은 그게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정당정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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