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3)
그냥 군사보호구역이라고 써 놓으면 될만한 걸 저렇게 극단적인 그림을 붙여 놨다.
가끔 보면 군사보호구역이 아닌 곳에도 저런 안내판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나 처럼 간이 작은 사람은 사진 찍는 것도 겁이 날 지경이다.
그림 옆의 어수선한 문구들은 싱가포르의 공용어들이다.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타밀어
싱가포르의 민족 구성이 그렇게 되어 있어 공용어만 네개다.
길거리의 안내표지는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고, 중국어를 함께 써 놓은 게 많다.
하지만 중요한 표지판에는 네가지 언어가 다 사용된다.
싱가포르의 공용어가 영어라고 알고 영어 배우기 위해 이민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생각을 고쳐 먹는 게 낫다.
일상에서 영어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나 같은 이주노동자와는 어쩔 수 없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싱가포리안들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눈다.
말레이어나 타밀어가 들리는 경우도 잦다.
영어는 잉글리시가 아닌 싱글리시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현지화 되어 있다.
미국인이 싱가포르에 와서 싱글리시를 못 알아 들어 같은 대화가 반복 될 정도다.
재래시장에 가면 영어를 못 알아 듣는 상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외부인 출입금지'경고 표지판의 그림이 위 사진처럼 극단적이고 직접적인 까닭은 네 가지 공용어를 다 써 놓아도 해석을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유독 금지표지판이 많은 것도 말이나 글로 전달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그림으로 된 금지표지판을 많이 세우는 것이다.
영어가 세계공용어의 지위를 얻었다며, 한국에서도 영어공용화 하자고 하는 주장이 가끔 들린다.
특정 지역을 정해 먼저 시도해 보자고도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발음 좋게 만든다고 혀 수술을 시키는 극성 학부모들이 기반으로 한다면 한국에서 영어공용화는 일정 수준의 성과를 가져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 버린 대부분의 국민들은 소외될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이 일상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이들도 많다.
영어공용화가 되면 컴맹, 넷맹들이 겪는 정보의 소외보다 더 큰 소외를 겪게 될 것이다.
제 나라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전 국민이 공유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나름의 문화를 만들고 누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것을 싱가포르에 와서 느낀다.
알아보기 쉽게 만드느라 극단적으로 표현한 그림, 네 가지 언어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경고 표지판.
내 눈에는 한국에서 가끔 튀어 나오는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경고 표지판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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