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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이건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괴물] 비행기 안에서 괴물을 만나다

(2006/12/05)


일본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괴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영화를 선택하면서 이번에는 효순이 미선이 생각 안 하기로 했다.
영화 전반의 반미코드 역시 무시하기로 했다.
그냥 남들이 말하는 대로 가족에 대한 영화라 생각하고 그 의미를 찾아 보기로 마음 먹었다.

젠장
그게 가능한 일인가?
교복입은 현서의 영정이 화면을 채우는 순간 애초 가졌던 생각들은 다 무너져 버렸다.
효순이 미선이가 화면 가득 채운 채 떠나질 않는데 어떻게 그 생각을 안 한단 말인가?
결국 괴물이 뱉어내는 현서의 모습에서 장갑차에 깔린 채 골이 으스러진 효순이 미선이의 모습을 떠올리고 말았다
우리가 효순이 미선이 이름을 잊는 그 때쯤 우린 또 다른 효순이 미선이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가족영화일 수도 있다
결국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니까
아무리 못난 아버지라도 현서에겐 정부나 군인이나 경찰이나 언론 보다도 나으니까
하수구에서 현서가 태주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가서 의사랑, 119랑, 경찰이랑, 군인이랑 다 데려 오겠다고..
순진한 현서는 그들이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운단 말인가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땐 아이들을 어떻게 하나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분명 죄다.
(영화일 뿐인데 너무 오버한다고? 글쎄…)

그래도 두 번째 보는 거라고 전에 못 봤던 내용이 몇 개 더 보였다
태주와 태주의 형이 매점을 털다가 태주가 돈을 집으니까 형이 말린다
먹을 걸 가져가는 건 단순한 서리지만 돈까지 가지고 가면 절도란다
그리곤 태주의 형이 태주에게 ‘서리’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서리란 배고픈 자들의 특권이라고.

사실 돈까지 집어 가더라도 태주와 태주의 형에겐 절도가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일 하고, 필요한 만큼 가지는 걸 성경에선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니까
최소한 내가 믿는 하나님 나라는 그렇다
배고픈 태주 형제에게 매점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권리이다.

다리 밑에서 만난 노숙자는 박해일이 건네는 지갑을 건네 받곤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친다
그리곤 한 마디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어”

다음엔 DVD를 구해서 아이들과 함께 볼 생각이다.
아이들은 이 영화에서 어떤 걸 보게 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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