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2)
“누가 1억만 빌려주세요"
윤민석씨가 트위터에 이 글을 남긴 게 8월 14일이었어요. 아마 다른 사람의 트윗이었다면 그렇고 그런 농담 중 하나인 줄로 알고 넘어 갔을 테지요. 하지만 그 트윗은 분명 윤민석씨의 것이었어요. “헛소리나 빈말 아니구요..욕해도 좋고 비웃어도 좋아요..아내 좀 살려보게요..” 이건 농담이 아니었어요. 민중가요 작곡자이자 노래운동가인 윤민석이 아니라 병마와 싸우는 아내를 둔 한 남편이 쓴 간절한 호소였어요.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전대협 진군가’, ‘결전가’, ‘서울에서 평양까지’, ‘너흰 아니야’, ‘헌법 제1조’, ‘격문’, ‘Fucking USA’,‘반미반전가’…
80년대 후반부터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민중가요를 만들어 냈고, 최근에도 고 김근태님의 추모곡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발표하는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마다 거기에 맞는 노래들을 만들어 낸 민중가요의 전설이 바로 윤민석씨잖아요.
거리에서, 현장에서 불려지는 그의 노래에 저작권료를 받았다면 빌게이츠보다도 더 부자가 됐을 거라는 농담이 그냥 농담만은 아닐 정도로 그의 노래는 민중가요가 필요한 현장에서 가장 널리 불려졌어요. 그런 그가 빌게이츠만큼 부자가 되기는커녕 아내를 살리기 위해 1억원을 빌려 달라는 호소를 트위터를 통해 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는 게 제겐 충격이었어요.
트위터로 윤민석씨에게 쪽지를 보냈어요. 어떻게든 도와 드리겠다고, 1억은 없지만 빌려 줄 수 있는 만큼 빌려 주겠다고 했지요. 윤민석씨는 고마워하면서도 이주노동자인 저의 형편을 걱정해 주더군요. 당장 통장에 잔고가 없어서 다음 주말까지 최대한 돈을 만들어 빌려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잠이 오지 않았어요. 돈을 마련하는 게 걱정이 아니라 제가 빌려 줄 수 있는 금액이 적어서 큰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윤민석씨의 지금 상황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고민하다가 세상에 널리 알리고 뜻을 같이할 후원자들을 모으기로 했어요.
밤새 글을 썼어요. 윤민석씨 노래들을 하나씩 골라 내고, 윤민석씨가 그 전에 인터뷰한 내용도 다 찾아 읽었어요. 그럴수록 윤민석씨에게 제가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린 윤민석에게 진 빚이 있잖아] 링크
15일 오전, 블로그에 그 글을 올리고 윤민석씨에게 쪽지를 보냈어요. 허락도 받지 않고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썼는데 나무라지 마시라고 부탁을 했죠. 윤민석씨는 다행히 나무라지 않았어요. 어려운 상황에 마음을 포개줘서 고맙다고도 했어요. ‘마음을 포개다’라는 말이 맘에 쏙 들었어요.
윤민석씨의 허락까지 받았으니 어떻게든 널리 알려야 했어요. 우선 트위터에 링크를 걸어 올렸어요. 고마운 트친들이 제 글을 리트윗 해 줘서 금새 많은 이들이 제 글을 읽게 되었죠. <오마이뉴스> 사이트에도 제 글이 소개가 되었어요. 조회수가 순식간에 많이 늘었죠.
제 블로그의 원고료 주기 란을 이용해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 왔어요. 글을 올린 지 네 시간 만에 후원금이 100만원이 넘었어요. 후원자 수도 50명이 넘었구요. 희망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트위터에 후원금이 100만원 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부디 리트윗 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 글은 155회나 리트윗 되었어요.
15일 저녁 다음의 ‘트위터 인물’ 순위에 윤민석씨가 10위로 올라 갔어요. 윤민석씨의 트윗을 본 다른 이들도 윤민석씨의 후원계좌를 적어서 트윗에 올렸고 그 글들이 널리 퍼져서 트위터 안에 윤민석씨의 사정이 많이 알려진 거에요.
블로그에도 댓글이 참 많이 달렸어요. 소 먹이 할 돈을 아껴서 보내겠다는 농촌총각, 하루 일당의 절반을 보낸다는 청년, 윤민석씨 고교은사님의 격려의 말씀까지 다양한 분이 다양한 의견을 주셨지요. 다들 자기 돈 내서 후원하면서도 자꾸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걸 읽으면서 저 역시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지요. 저도 없는 형편에 후원하는 거지만 다른 분들도 다 마찬가지였어요. 나눔은 가지고 있는 돈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치열하고 올곧은 신념 영원히 기억 하겠습니다 / 이렇게 살아오신 분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그래도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압니다 / 제가 진 빛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 없지만, 작은 마음하나 보탭니다. / 이제라도 그대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야 겠네요 / 고맙고 미안하고 너무 가슴이 아려옵니다. /윤민석 작곡가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헌금전액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에 빚진게 많아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마음의 빚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당신의 노래소리에서 희망을 꿈꾸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신에게 희망을 꿈꾸게 해 드려야 겠네요. 힘내세요… / 아내가 대뜸하는 말이, "생일 선물 살 돈으로 윤민석씨 돕자."라는 겁니다.
글을 올린 지 사흘 만에 후원자 수 500명, 후원금 1000만원이 넘어 버렸어요. <오마이뉴스>에서도 이 소식을 기사로 실어 다른 이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주었어요.
윤민석씨에게 이 소식을 전했죠. 윤민석씨도 제 블로그에 남겨진 후원자들의 격려 글들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 왔어요. <오마이뉴스> 측에서 원고료 정산을 해 줘야 하고, 저 역시 돈을 마련해야 했기에 24일까지 입금을 하겠다고 했어요. 윤민석씨는 제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원고료만 보내 줘도 된다고 했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어요.<오마이뉴스>블로그의 원고료는 전액이 블로거에게 지급되는 게 아니라 통신사와 카드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뗀 나머지 금액만 지급된다는 거에요. 후원하신 분들은 제 블로그를 통해 후원하면서 전액이 윤민석씨에게 지급 되는 걸로 알고 후원했는데, 그 중 일부가 수수료로 쓰인다고 하면 얼마나 맘 상하겠어요. 물론 <오마이뉴스>가 중간에 따로 이익을 취하는 건 아니었어요.
아무튼 <오마이뉴스>에 연락을 했어요. 제 글을 널리 소개 해 줘서 후원금이 많이 모일 수 있도록 협조 해 줘서 고맙지만, 후원자들의 맘과 윤민석씨의 사정을 생각해서 전액이 전달 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요.<오마이뉴스>에서는 안 그래도 간부 회의를 통해 그 안이 논의가 되었고 수수료 부분은 전적으로<오마이뉴스>에서 책임져 주기로 결정을 했다고 했어요. 수수료를 <오마이뉴스>가 부담하기로 한 거죠. 정말 고마웠어요. (맘 이끌리는 분들은 이 참에 <오마이뉴스>의 ‘10만인 클럽’에 가입 해 주시면 좋겠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8월 22일 오전) 후원자 수는 674명에 후원금은 천삼백만원이 넘었어요.
제 블로그를 통해 모인 후원금은 <오마이뉴스>에서 윤민석씨 계좌로 직접 보내 달라고 했어요. 굳이 통장 하나 더 거칠 이유가 없으니까요. 아마 이번 주 금요일에 입금 될 거에요. 그리고 제가 약속한 금액은 조금 전에 계좌이체 했어요.
윤민석씨에게 후원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후원한 사실을 굳이 떠벌리느냐고 나무라실 분이 있겠네요. 굳이 떠벌리려는 건 아니고, 제가 한 약속이고 그 약속을 보고 제 블로그를 통해 후원하신 모든 분들께 확인은 시켜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알려 드리는 거에요
돈 문제는 정확할수록 좋으니까요. 그리고 저처럼 없이 사는 사람이 후원하는 걸 보고, 누군가 자극을 받아 윤민석씨에게 더 많은 금액을 후원한다면 더 바랄 게 없구요. 그 동안 제 블로그를 통해 후원하신 분, 제가 쓴 소식을 널리 알려 주신 분, 제 블로그에 댓글로 윤민석씨를 후원하신 그 모든 분들께 지난 경과를 소상히 알려 드리는 것 역시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사실 윤민석씨의 노래는 잘 알아도 윤민석씨는 잘 몰라요. 10여년 전 행사장에서 지나치며 악수 한번 한 게 다 거든요. 윤민석씨는 절 아예 모르구요. 저 역시 길거리에서 만나면 윤민석씨를 못 알아 볼 거에요. 전 단지 윤민석씨의 노래에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그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글도 올리고 다른 분들께 후원을 호소한거죠.
이번 일은 어려움에 처한 윤민석씨 개인을 돕는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의로운 일에 앞장 서 온 동지에 대한 나눔과 연대 라고 생각했어요. 후원하신 분들의 글들을 하나 하나 다 읽어 봤는데 다 같은 심정이더군요. 저 거기에도 감동 많이 먹었어요.
기쁜 소식이 하나 있어요. 21일 낮 윤민석씨가 트위터를 통해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어요.
"조금전 아내가 근 한달여만에 기적처럼 미음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세 숟가락이나요.. 맘포개주시고 도움주시고 기도해주신 모든분들 덕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후원금으로, 댓글로, 쪽지로,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아무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여러분들이 윤민석씨를 후원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기적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양윤경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 털고 일어나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기를 우리 모두 기도하자구요.
제 블로그를 통해서 1억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많이 부족하네요. 윤민석씨 개인 계좌로 후원된 금액도 있으니 그렇게 많이 부족하진 않을 거에요. 아직 후원하지 않으신 분은 지금이라도 아래 계좌로 직접 후원해 주시면 좋겠네요.
국민은행 043-01-0692-706 예금주:윤정환 (윤민석의 실명)
모쪼록 이번 일로 윤민석씨 부인 양윤경씨의 병도 낫고 윤민석씨도 다시 힘을 얻어 더 좋은 노래로 돌아 왔으면 좋겠어요. 윤민석씨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경과보고 마무리할게요.
여러분 모두 마음 포개 주셔서 고마워요.
아래는 본문에 달린 댓글
끼리코 2012/08/22 21:09
감사합니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우리 모두의 따듯한 마음을 모으며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위로받을 수 있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지않아도 아내분께서 미음을 드셨다는 트윗글을 보면서,
여러 사람이 보낸 마음에 힘을 얻은 윤민석씨의 마음 그대로가
아내분께도 전해져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늦게, 너무 힘들 때 알아서...미안한 마음이지만,
앞으로 더 잘 살피고 세상 살게요, 착하고 정의로운 이가 아프지 않은지...
우리 모두의 희망이 아름다운 결실로 맺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동시대를 살아오며 2012/08/22 17:32
감사합니다. 마음이 포개지고 희망도 더욱 포개지기 소망합니다.
혼수상태 2012/08/22 20:55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시지만...정말 존경스럽네유....
근데 이건 내 생각인데......솔내음님도 부자가 아닌건 확실한거 같습니다.왜냐하면... 먹고사는데 전혀 문제가없는 부자라면 1천만원씩이나 기부(?)한다는건 도저히 생각조차 할수도 없습니다. 빚(?)이 아니라 빚(?) 할애비가 있다해도...아니 1천만원이 아니라....단돈 십만원도 기부같은건 생각도 하지않습니다.
부자들의 더러운 근성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습니다.
봄터 2012/08/22 23:00
저 역시, 진 빚이 많습니다. 마음은 더 보내고 싶었지만 마음만큼 보내지는 못 했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접 입금했습니다. 어서 빨리 건강을 회복 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08/22 23:49
감사합니다
김광식 2012/08/23 10:24
작은 정성이지만 보탭니다.
CRO 2012/08/23 10:53
저도 얼마 안 되지만 기꺼이 보탭니다.
해산 2012/08/23 16:29
지금은 빚이지만,,조만간 빛으로 돌아올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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