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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 중국 연수 체험기 5. - 갇혀 있는 광개토대왕비

solneum 2022. 1. 26. 22:52

백두산에서 광개토대왕비를 보기 위해 길림성 통화시까지 밤기차로 이동을 했다. 300여km의 거리지만 워낙 완행이라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좁고 불편한 이층 침대가 놓여 있는 침대 칸에 4명이 들어 갔다. 천장에선 선풍기가 돌아가고, 객실 어디선가 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가끔 지나 다니는 승무원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역에 도착을 해도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손님이 알아서 내려야 한다.

그래도 백두산에서 워낙 피곤했던지 침대에 머리를 눕히자 마자 잠이 들어서 8시간 내내 깨지 못했다. 통화시에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안으로 이동을 했다.

점심을 북한에서 직영하는 “묘향산호텔 식당”에서 먹었다. 음식은 푸짐했고, 맛도 있었다. 얇은 두부에 여러가지 매운 야채를 싸 먹는 게 있었는데 (사진을 못 찍은 게 대략 낭패) 먹을 때는 무척 맵더니 한국에 돌아와서 내내 그 생각만 난다.

 



한국 관광객이 자주 찾아오는지 거부감 없이 편히 대해 준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흔쾌히 자세를 취해 준다. “조선”이라는 간판 아래서 “공화국 배지”를 단 접대원하고 사진을 찍었다. 국가보안법아 덤벼라.

식당 바로 앞이 압록강이고 그 건너로 북한 땅이 보인다. 북한 땅을 바라보기 좋은 곳에 중국 상인들이 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돈을 받는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라 망원경이 필요 없는 곳이다.

“백두산에 함께 올라 압록강물 처음 볼 때 괜시리 눈물이 흘러내리면 어쩌나”

“통일이 그리워” 라는 노래의 일부다. 사실 백두산에서는 압록강물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백두산에도 올랐고 압록강도 봤으니 이제 눈물이 흘러내릴 때가 되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반가운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광개토대왕비로 이동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비석이었지만 유리로 만들어진 정자 속에 갇혀 있어 답답해 보였다. 대륙을 우러러보는 언덕에 우뚝 서 있을 줄 알았는데…

 



몇 발 떨어지지 않은 광개토대왕능은 심하게 훼손이 되어 있었다. 곳곳에 잡초도 무성하고 무덤 안까지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광개토대왕을 발로 밟고 올라서는 기분이 들어 내내 찜찜했다. 능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이런 취급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능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시신이 놓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판 두개가 전부였다. 

근처 장군총은 큰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라 그나마 그 모습이 온전해 보였다. 사방을 돌 세 개씩으로 기대어 놓았는데 뒤편 가운데 한 개가 유실되었단다. 장군총 역시 계단을 밝고 올라가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광개토대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물을 인솔하는 교수는 우리의 옛땅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하지만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이 혹시 침략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우리 조상이 한 때 만주 벌판을 지배했다는 사실에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나 스스로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식사 이후 집안 시내를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으나 탈북자 또는 중국 건달에 대한 가이드의 협박성 주의 때문에 큰 길가로만 돌아다녔다. 한국 관광객이 거리에서 싸움을 하거나 술집에 잘못 들어가면 공안이 나타나 여권을 빼앗는단다. 그리곤 500달러 정도를 내야 돌려준단다. 어디가나 경찰이 제일 부패하고 가장 늦게 개혁되는가 보다. (계속…)

 

(200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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