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호치민 여행 사흘째, 호치민 4군에 갔어

solneum 2022. 1. 16. 10:59

호치민에 오면서 애초 계획했던 무이네 모래언덕과 메콩 델타를 포기했어. 대신 호치민 시내를 좀 돌아다니기로 했어. 일단 배가 고프기도 하고, 호치민에 와서 아직까지 베트남 쌀국수를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서 구글맵에 저장해 둔 벤탄 시장의 베트남쌀국수 집을 찾았어. 예전에 클린턴 대통령이 들던 집이라고 해서 유명해진 집인데 소문을 듣고 온 관광객들로 가득했어.

 

? 관광객들에게만 유명한 식당이 맛있을 리가 없잖아. 그저 그랬어. 예전에 하노이에서 베트남쌀국수를 먹을 땐 거의 감격에 겨웠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선 실망만 하고 나왔어. (아무튼 어느 나라나 대통령이 방문한 식당치고 제대로 된 식당은 없는 것 같아)

 

배도 부르겠다 호치민 시내를 무작정 걸었어. 도심 관광 코스라는 통일궁, 노트르담 성당, 중앙우체국, 시청 광장뿐만 아니라 사이공 강변을 걷기도 하고 타오당 공원 같은 도심의 공원에 한동안 주저 앉아 있기도 했지.

 

도심의 관광지를 돌아다녀도 특별히 신기하거나 새롭거나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었어. 가족과 함께 왔으면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건지려고 애썼겠지만 혼자 맘 내키는 대로 온 여행이라 그런 긴장감이 없어서 그랬을 거야. 내가 싱가포르에 살고 있어서 베트남의 도심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도 있었고. 그냥 국가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건물 높이의 차이와 오토바이 수 말고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어.

 

그러다 “4생각이 났어. 인터넷을 통해 호치민 관련 검색을 하다가 "호치민 사람들은 1군에서 놀고, 3군에서 살며, 5군에서 먹고, 4군에서 죽는다!”는 글을 봤거든. 4군은 한 때 마피아들이 활개를 치던 곳이었는데 이젠 마피아들은 대충 소탕되고 강가에 위치한 덕에 해산물 노점들이 많은 서민적인 곳으로 바뀌었다고 했어.

 

지도에서 보니까 관광지가 모여 있는 1군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4군 이더라구. 그래서 한번 가 보기로 했어. 지겨운 것 보다는 위험한 게 낫잖아. 관광객이 없는 곳에서 간단히 저녁 한 끼 먹고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 내가 해산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택시를 타고 4군 해산물 식당 거리로 갔어. 길 양쪽에 한 눈에 봐도 열 개가 넘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다들 인도에까지 낮은 탁자와 의자를 내 놓고 손님을 받고 있었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식당에 자리를 잡았어. 조개구이 몇 개하고 맥주를 주문했지.

 

여기는 탁자와 의자를 길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도록 배치해 놨어. 그러니 나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 보고 지나 가는 사람들도 술 마시는 나를 쳐다 보게 되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 프랑스도 카페에선 다들 거리를 향해 앉아서 술을 마시잖아.

 

가족끼리, 친구끼리, 일을 마친 동료들끼리테이블마다 다양한 조합의 사람들이 각종 해산물을 앞에 두고 술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서울이나 싱가포르나 호치민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 관광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니 나 하나 뿐인) 이 곳이 맘에 들었어.

 

그런데 4군이 유난히 그런 건지 아니면 길거리 술집이라 그런지 잡상인이 꽤 많았어. 땅콩이나 베트남 간식거리를 들이미는 사람부터 이 시간에 썬글라스를 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권 같은 걸 사라는 할머니도 있었어. 베트남말로 뭔가를 사라고 하면 영어로 미안하지만 필요없다고 거절했어. 기계적으로... 정말로 사 주고 싶어도 관광객인 내겐 그 어느 것 하나 눈꼽만큼도 필요한 게 없었어.

 

그래도 맘이 안 좋더라. 내가 거절 공포증이 있어 남들에게도 잘 거절을 못하기도 하지만 물건을 내미는 사람들 대부분이 할머니 아니면 아이들이라서 더 그랬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조차 선뜻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니,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조차 선뜻 살 수 있을 만큼 내 마음 씀씀이가 제대로였으면 정말 좋았겠지.

 

더해지는 맥주병과 함께 호치민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어. 그 술을 마시고도 별일 없이 살아 돌아온 걸 보니 4군이 소문만큼 그리 위험한 곳만은 아닌 것 같아.

 

(20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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