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혼자 떠나는 호치민 여행, 첫날 비행기를 놓치다.

solneum 2022. 1. 16. 10:02

나흘간 베트남 호치민에 다녀 왔어.

혼자.

딱히 이유 같은 건 없어.

회사에서 매 분기마다 휴가를 다 쓰리고 하는데 9월말에 두개가 남아서 휴일과 이어서 나흘을 쉬게 된 거야.

 

나흘 동안 뭘 할까 생각하다가 혼나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알아봤는데 호치민이 거리도 가깝고 비용도 적게 들더라구.

너무 부러워하지 않아도 돼.

동남아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싱가포르는 버스만 타도 남의 나라 여행 갈 수 있는 곳이고, 비행기도 저가 항공이 많아서 외국 가는 게 한국 살면서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랑 비슷하니까.

 

원래 계획은 이랬어.

첫날은 호치민 시내 관광, 둘째 날은 구찌터널 다녀온 후 무이네로 이동해서 셋째 날 무이네 모래 언덕 둘러보고 호치민으로 돌이 와서 베트남 쌀국수 먹고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것.

숙소도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와 야간 침대 버스 그리고 최고급 호텔을 두루 경험해 보려고 계획을 짰지.

 

그런데 계획을 들은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

"이제 나이 그 정도 먹고 또 그 정도 벌면 게스트 하우스 같은 건 젊은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제대로 된 호텔에서 자. 마흔 넘은 아저씨가 게스트 하우스 8인실에 가면 거기 모인 젊은 친구들이 좋아 하겠어? 기껏해야 오늘 호구 하나 왔다 하겠지. 게다가 만약 그 룸에 다 너 같은 아저씨들만 모여 있다 생각해 봐. 그건 또 얼마나 끔찍한 일이야. 못 사는 나라 가면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고 호텔에서 자고, 택시비 내고 잔돈 정도는 그냥 넣어 두라고 하고, 밥도 제대로 된 걸로 먹으면서 그렇게 다녀. 그게 소위 말하는 착한 여행이야."

 

젠장, 한마디 한마디가 다 옳아서 반박도 못하겠더라구.

그래서 일단 호텔은 호텔닷컴 앱 이용해서 여행자거리에 있는 깔끔한 곳으로 정했어.

그래 봐야 게스트 하우스 보다 돈 만원 정도 더 내면 되더라구.

 

비행기는 비엣젯으로 예약했고.

비엣젯 승무원들이 비키니를 입고 서비스한다는 뉴스 때문이 아니라 저기 항공 중에서도 제일 저렴해서 그런 거야. (제트항공이 5달러 더 저렴했지만 거긴 터미널이 동떨어져 있는 곳이라 불편해서...

 

그래서 호치민으로 가는 날, 구글트립스라는 앱을 깔았어.

정말 괴물 같은 앱이더라.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만 했는데 메일 내용을 다 파악해서 내가 언제 어디로 여행을 갈지 그리고 어디에 머무를지도 다 정리가 되어 있었어.

내가 가는 곳 주변의 관광지 정보나 맛집 정보는 기본이고, 해당 정보를 다운 받아 놓으면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도 정보 검색이 가능한 거야.

지도, 교통편 그리고 그 밖에 호치민 여행 관련해서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은 내용들도 함께 정리되어 있고...

 

그렇게 구글트립스에 감탄하고 있던 중에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

출발일은 분명 22일인데 앱에는 21일 출발이라고 되어 있는 거야. 메일을 열어 예약을 확인했더니 21일에 호치민 가는 비행기를 끊은 것으로 되어 있었어.

여행 시작 날짜가 21일이 아니라 22일이었어야 하는 거라구... OTL

 

예약할 때 날짜를 잘못 선택했나 봐.

내가 타야 할 비행가는 하루 전에 벌써 떠나 버렸고, 난 공항에 남겨진 거야. 저가 항공은 가격이 싼 대신 일정을 바꿀 수가 없거든.

그래서 다른 비행기 편을 알아봐야 했어. 부랴 부랴 휴대폰으로 검색했더니 같은 항공사에서 저녁에 떠나는 비행기가 하나 더 있었어. 예약을 했지.

 

이 대목에서 궁금한 거 하나.

난 비행기 일정을 알아보고 결제하는 전 과정을 휴대폰을 통해 했어. 한국의 항공사도 마찬가진가?

액티브액스니 공인인증이니 하는 거 필요없이 휴대폰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비행기 표를 살 수 있는 거 맞지?

만약 아니라면 베트남의 저가항공사 보다도 더 후진 결제 시스템을 갖고 있는 거야.

내 생각이 그냥 기우이길 바라.

 

공항에서 여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어.

나쁘진 않았어.

지나 가는 여행객 모습만 봐도 지겹지 않던 걸.

여행에 나선 사람들의 배낭과 케리어엔 뭔가 저마다의 이야기가 하나 가득 담겨 있을 것만 같았어.

기다리는 동안 공항에서 드라마 찍는 현장도 볼 수 있었어.

잠깐인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주연인지 누가 조연인지 알겠더라.

한눈에 봐도 건방이 흘러 넘치는 사람이 주연, 잠시라도 틈만 나면 연기 연습을 반복하는 사람이 조연.

사진만 봐도 누가 건방 넘치는 주연인 줄 알겠지?

 

어떤 자리에 있어도 겸손할 줄 아는 사람, 아니 최소한 거들먹거리지는 않는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는 별로 쓸 데 없을 것 같은 다짐을 했어.

 

비행기를 탔어.

당연히 비키니를 입은 승무원은 없었지.

그래도 복장이 참 편해 보이더라. 면티에 반바지 차림이었거든.

그러고 보면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만 승무원의 머리 모양이나 복장에 과도한 규제를 하는 것 같아.

경험 많아 보이는 삼사십대 여성이 대부분인 다른 나라의 승무원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승무원은 그냥 젊고 예쁘기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비행기를 타면 제일 먼저 안전벨트 매는 법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기내 안전수칙을 알려 주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 전에 기장의 특별 주의 사항이 먼저 나왔어.

삼성 갤럭시 노트 7을 들고 탄 승객이 있다면 전원을 켜지고 말고 사용하지도 말고 충전도 하지 말란다. 행여 휴대폰에서 열이 나거나 연기가 나면 승무원에게 바로 알리라는 말과 함께.

 

삼대 세습에, 탈세에,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죽음, 회장의 성매매와 거기에 동원되는 회사 자산, 거기에 폭발하는 휴대폰까지. 삼성이 보여주는 막장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할 지경이야.

 

글이 길어 슬슬 지겹지? 호치민 도착하기 전에 일단 여기서 끊자.

호치민에서의 이야기는 이어지는 글에서 시작할게.

 

(201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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