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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재해로 기네스북에 오른 회사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

solneum 2022. 1. 15. 12:41

(2018/09/07)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8, 난 삼성반도체의 신입사원이었다.

당시 공장 입구에는 무재해 기록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무재해 10, 100, 200, 300, 1000 매일 같이 숫자는 바뀌고 공장에서는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했다.

며칠 전에도 누군가 깨진 웨이퍼에 손이 베어 의무실로 갔었는데.

 

신입사원의 의문은 쉽게 풀렸다.

삼성은 사람이 다쳐도 다쳤다고 해선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다치면 이제껏 쌓아온 무재해 달성 기록이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그건 다친 사람이나 다치게 방치한 사람 모두에게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다쳐서 재앙이 아니라 다친 게 기록으로 남는 게 재앙이 되는 구조였다.

나 역시 삼 년 남짓 그 곳에서 일하면서 기계에 부딪히고, 공구에 긁혀 여러 번 멍들고 다쳤지만 한번도 다쳤단 소릴 한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난 더 이상 삼성의 노동자가 아니던 1999, 삼성반도체 기흥 사업장이 세계 최장의 무재해 사업장으로 선정이 되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공단은 17일 기흥사업장 (종업원 12천여명)에 대해 91 11 4~98 8 20일까지 610개월에 걸쳐 총 21160만 인시 (人時.종업원수에 근로시간을 곱한 값) 의 무재해기록과 최초의 '무재해 50배 사업장' 으로 인증했다. [출처: 중앙일보]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무재해 세계최장기록

 

그 기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떠난 후에도 삼성은 여전했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쳐도 다쳤다는 소리도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속으로만 울었을까

 

30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다른 게 있다면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뿐.

다른 게 하나 더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클린룸 입구에도 무재해 기록판이 있는데 여기 기록판은 무재해 달성 10일을 넘기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거다.

만 명 넘는 직원이 일하는 삼성 반도체는 무려 6년 동안이나 재해가 없는데, 천 명 조금 넘는 싱가포르의 반도체 공장은 왜 열흘이 멀다 하고 재해가 발생하는 걸까?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삼성에서는 다쳐도 다쳤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서 사람이 가스에 중독되어 죽어 가는 중에도 신고 전화 한 통 못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아주 작은 문제만 있어도 바로 보고가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계단을 오르내리다 발을 삐어도, 문을 세게 열다 이마를 찧어도, 공구를 쓰다가 살짝 손을 다쳐도 무조건 재해로 기록한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안전 사고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노동자가 실수로 미끄러져 의자와 함께 넘어진 일이다

이 일로 인해 무재해 기록판의 숫자는 다시 0이 되었고, 넘어져 다친 노동자는 하루 병가를 냈으며, 안전 담당자가 그런 사고가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회사 전체에 공유를 했다.

 

사고를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소한 사고도 크게 여기고 대책을 마련하는데 있다.

이 회사는 매 분기마다 실전을 방불케하는 방재훈련을 전 사원을 대상으로 한다.

사이렌이 울리면 클린룸에 있던 노동자들이 방진복을 입은 채로 밖으로 대피를 한다.

생산 중단으로 인한 피해? 여기선 그런 거 아무도 안 묻는다. 안전이 우선이다.

실제로 가스가 누출 되거나, 전기가 끊어 지거나, 누군가 실수로 비상벨을 눌러서 사이렌이 울리면 근처 소방서에 자동으로 연락이 가게 되어 있어서 소방차와 구급차가 출동을 한다.

소방관들은 회사에서 실수였다고 해명을 해도 반드시 현장에 와서 확인하고 돌아 간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반도체 회사는 매주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 같지만, 그 누구도 크게 다치거나 죽어 나가는 일은 없다.

 

삼성에서는 자사 직원이 죽거나 밖에 알려질 정도로 크게 다치지 않는 한 무조건 무재해다.

그러니 이번 주에도 삼성에서 일하던 하청 회사 직원, 20대 청년이 가스 사고로 죽고 두 명이 생사를 오가는 중에도 즉각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은 거겠지.

삼성 사원증을 달고 일했던 청년, 황유미씨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도 회사 책임 아니라며 모른 채 하여 그 아버지를 10년 넘게 거리에서 투사로 살게 만든 게 삼성 아니었던가.

 

삼성이 세계에서 제일 반도체를 많이 만들어 파는 회사지만 죽었다 깨어 나도 1등 반도체 회사가 될 수 없는 건,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동남아의 어느 작은 반도체 공장의 발 뒷꿈치도 못 따라가는 후지고 위험한 그런 회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지난 선거에서 그랬다.

사람이 먼저다.”

삼성, 부끄러운 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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