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투성이 부부배낭여행 #18. 벌거벗은 예수의 열 두 제자
드디어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떠나는 게 아쉬워야 할 텐데 여권이 든 가방을 도둑맞은 후론 정나미가 떨어져 하루빨리 떠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전 날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던 루브르로 아침 일찍 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루브르 앞 정원을 여유롭게 거닐다가 유리 피라미드 앞에 사람들이 줄 서기 시작하는 걸 보고 같이 줄을 섰다.
8시부터 줄을 섰는데 9시가 되어서야 문을 열었다. 그 사이 하늘에선 가늘게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에펠탑 모양의 열쇠고리를 팔던 흑인들이 어느새 우산을 들고 나타났다. 하늘이 어두우니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비가 더 내리면 비를 피할 곳이 없는 상태라 우산은 꽤 잘 팔렸다.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 안으로 입장을 했는데 표가 없단다. 사람이 많아서 뮤지엄 패스만 입장이 가능하단다. 잃어 버린 가방 안에 뜯지도 않은 뮤지엄 패스가 두 개나 있었다고 이야기해 볼까 하다가 말았다. 쓰린 가슴을 안고 바로 옆에 있는 팔레 후와얄로 갔다. 정원수를 깍둑썰기 해 놓은 곳인데 영화 미션임파서블6에 나와서 더 유명해졌다.
어쩔 수 없이 오르세로 갔다. 다행히 거긴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입장이 가능했다. 사실 루브르와 오르세 중 하나만 봐야 한다면 난 오르세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리가 처음인 아내에겐 아무래도 루브르를 보여 주는 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루브르로 먼저 갔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오르세로 간 게 더 잘한 것 같다.
여기서도 오디어 가이드를 빌려서 관람했는데 난 전에 와서 하루 종일 있었던 곳이라 밀레도 고호도 처음 볼 때의 그 느낌은 없어서 그냥 아내의 미술관 가이드 역할에만 충실했다. 몇몇 작품은 그 전과는 다른 곳에 전시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매번 조금씩 바꾸는 것 같았다. 이런 미술관을 원할 때마다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 복 받은 사람들이다.
나와서 구글 맵에서 찾은 한식당으로 갔으나 낮에는 문을 닫아 근처의 일식당으로 갔다. 손님이 없는 곳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근처 스타벅스 커피가 더 나았다. 관광객들은 다들 스타벅스를 공중화장실 정도로 여기는지 화장실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를 찾아가는 길에 오페라 버스킹을 하는 가수를 만났다. 건물 지붕 아래라 그러지 안 그래도 큰 목소리는 더 크고 넓게 울려서 마치 공연장에서 듣는 것 같았다. 대신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버스킹을 하는 다른 가수는 실력이 영 모자란 듯 느껴졌다.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 근처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거리를 보며 술을 마셨는데 확실히 유명 관광지보다는 숙소 근처의 평범한 식당이 훨씬 친근하고 느낌이 좋다. (여행 노트에는 길거리 댄스도 구경하고 밤 9시에 무지개도 봤다고 적혀 있는데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행기는 다녀와서 바로 써야 했다)
파리, 그 전에 왔을 때는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했었는데, 이번에는 평생 다시 올 일 없겠다는 생각에 아주 살짝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