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아(이건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solneum 2021. 1. 16. 12:27

 

 

1990년대, 주인공 이자영은 ‘커리어 우먼’을 꿈꾸며 삼진그룹에서 일하지만 실상은 입사 8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재떨이를 비우고, 실내화를 가지런히 정리한 후 다른 직원들의 커피를 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말단 사원이다. 고졸 여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 일해도 진급이 안 된다.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진급을 위한 조건을 내건다. 토익 600점. 공고를 보고 말도 안 되는 점수라며 불평을 하는 것도 잠시, 8년 만에 찾아온 진급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영과 친구들은 영어 수업을 듣는다.

 

어느 날 새로 온 상무의 짐을 대신 정리해 주기 위해 공장을 찾은 자영은 공장에서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함께 간 대리를 설득하여 보고서를 올린다. 그로 인해 회사에서는 팀을 꾸려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대책이라는 게 방류된 폐수에 문제가 없다는 가짜 보고서를 만들어 주민들을 입막음 하는 것 뿐임을 알게 된 자영은 친구들과 함께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일에 나선다.

 

영화는 회사측의 악랄한 방해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영과 친구들이 끝내 승리하고, 폐수 방류를 지시하고 은폐한 이들이 벌을 받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1991년 두산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는 문제 해결 과정을 판타지스럽게 만들어 버리긴 했지만, 1990년대를 제대로 그려낸 미술과 주연 배우의 맞춤 연기, 그리고 젊은 여성들의 연대로 사회 부조리를 이겨내는 모습을 경쾌하게 담은 장점들이 어지간한 영화적 단점에는 눈을 감게 만들었다.

 

내가 만약 어느 회사의 폐수 방류를 목격했다고 치자. 난 그 회사의 직원은 아니지만 대신 그 회사의 주식을 많이 사 둔 상태다. 난 어떻게 행동할까?

 

그 회사의 폐수 방류 사실이 알려지면 주가가 떨어질테고 그러면 다들 주식으로 돈 번다는 이 시절에 나만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다. 환경을 생각해서 기업의 불법행위를 고발한다가 정답이지만 내가 과연 정답을 따를지는 자신이 없다.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주식투자에 열심이다. 다들 자기가 투자한 기업이 잘 되기를 바랄 텐데 그 기업의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뉴스가 나오는 걸 싫어한다. 문제는 이거다. 기업이 나쁜 짓을 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 짓이 공개되는 걸 싫어하게 된다. 내 돈이 걸려 있으니까.

 

주식에 돈을 거는 순간부터 삼성 이재용이 재판에서 집행유예 정도로 풀려 나기를, LG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가 유야무야 되기를, 포스코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주식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들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한다는데, 가만히 있자니 나만 가난해지는 것 같은데, 그거라도 안 하면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하더라도 내게 돈 많이 벌어줄 것 같은 회사 말고, 내가 잘 되라고 응원해 주고 싶은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정도의 타협은 하자는 거다. 낙동강에 페놀 버리는 회사 말고, 제품 하나 팔 때마다 나무라도 하나 심는 그런 회사에 투자하자는 말이다.

 

돈 놓고 돈 먹는 주식 시장을 두고 너무 단순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회사에서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던 이자영이 회사의 비리를 알게 된 후 이런 말을 한다. 나도 같은 맘이다.

 

“저는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 회사가,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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