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평 임대아파트를 두고 "니가 살아 봐라" 하는 이들에게
맨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회사 기숙사에서 살았다. 8평이 채 안 되는 방에 2층 침대 두 개, 옷장 네 칸, 그리고 책상 두 개가 전부였고, 거기에 또래의 남자 넷이 함께 생활했다. 화장실과 세면장은 공용이었고, 1층에는 작은 공용 주방도 하나 있었다. 거기서 사회 생활 시작했다.
회사 그만 두고 학교 다닐 때는 수원에서 자취를 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는데 방 하나 다락 하나 그리고 구석에 연탄을 쌓아 두게 되어 있는 작은 부엌이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세면도 함께 해결해야 했다. 화장실은 마당 한구석의 공용을 사용했다.
군대 다녀와서 서울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을 했다. 회사가 광장동에 있어서 근처 천호동에 방을 하나 구했다. 단독주택 뒤에 원래 창고 용도였던 것 같은데 거길 방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로 개조한 방이었다. 방안에 작은 창이 하나 있었는데 그 창을 볼 때마다 다음에 돈 많이 벌면 창이 아주 큰 집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방을 구하고 나서 보니 거기가 사창가와 좀 가까운 곳이었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직장도 부천의 반도체 회사로 옮겼다. 그리고 신혼집은 부천의 어느 옥탑방. 창은 넓고 햇볕은 잘 들었다. 햇볕이 너무 잘 들어서 여름엔 더웠고, 창이 넓어서 겨울에는 참 추웠다. 거기서 큰 애를 낳았다.
그 다음에 이사를 한 집은 어느 연립 건물 1층이었는데 번호만 1층이지 실제로는 반지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 두 개짜리 집으로 옮긴 걸로 만족하고 살았다. 거기서 둘째가 태어났다. 곰팡이 피는 건 어떻게든 치우며 살았는데 여름 장마철에 배수관이 광고지로 막혀 물이 집으로 들어 올 상황을 겪은 후에는 반지하만큼은 못 살겠다 싶더라.
대기업만 10년 넘게 다닌 덕에 돈은 없어도 은행 대출은 잘 되더라. 그걸로 드디어 단독주택 1층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동네도 좋고, 집도 좋고, 거기서 오래 살고 싶었다. 그래 봐야 방 두 개 거실 겸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인 10평 규모의 작은 집이었지만.
우리가 1층에 살았는데 2층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갔다. 집주인이 우리더러 집값 많이 안 받을 테니 2층에 올라 와서 살라고 했다. 그 집이 3층짜리였는데 3층은 주인이 살고, 2층은 한 가구, 1층은 두 가구였다. 그러니 2층으로 올라 가면 집이 두 배로 넓어 지는 거였다. 하루를 고민하고 바로 은행에 가서 대출을 더 받았다.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방이 세 개나 되는 전세집에 살게 되었다. (그 땐 그게 너무 좋아서 그걸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썼다) 그래 봐야 20평이 안 되는 작은 집이었다.
그 집에서 꽤 오래 살다가 싱가포르로 이민을 왔다. 15년 전에. 여기서는 전세도 아니고 월세로 살았다. 다시 방은 두 개부터. 딸 둘을 키우면서도 그게 작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불편하다거나 창피하다거나 그런 생각 안 해 봤다. 한국에서 손님들 놀러 오면 거실에 매트 깔고 같이 자고 그랬다.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까워서 싱가포르 변두리에 방 두 개짜리 HDB (싱가포르 정부가 공급하는 서민아파트 – 이것도 기사로 썼다)를 하나 샀다. 한국에서도 엄두를 못 냈던 내 집마련을 남의 나라에 와서 이룬 거다. 집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들어 가 사는 곳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고, 그러다 보니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집 사고 돈 불리고 하는 것 한 번도 못해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13평 방 두개짜리 임대아파트를 보고 한마디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대통령이 하지 않은 말을 대통령이 한 것처럼 교묘하게 비튼 기사였다) 기사에 딸린 댓글은 “니가 살아 봐라” 수준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은 댓망진창이고, 내 페친들도 그 기사를 퍼 나르며 한마디씩 악담을 한다.
이제 사회생활 막 시작한 이십 대 청년이나, 가난한 신혼부부들에게 정부가 공급하는 13평 방 두개짜리 임대아파트는 고시원이나 옥탁방이나 반지하 셋방 보다 훨씬 아늑한 보금자리일 수 있다. 내가 사는 수준에는 안 맞아 보여도 실제로 그 정도 수준의 주거환경을 바라는 이들도 아주 많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거기다 대고 “니가 살아 봐라”는 식의 대꾸를 하면 실제로 거기에 가서 살게 될 사람들에게 어쩌란 말인가.
문재인 정부가 헤매는 것도 많고 기대에 안 차는 부분도 많다. 그러면 그런 부분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반대와 지적질을 하다가 우리 이웃의 상처까지 건드려 모욕하는 일은 하면 안 된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라고 했다. 논객이라는 사람들이나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페북에 세상사에 한마디씩 건드리는 사람들이나 다 마찬가지다. 공적인 발언을 할 땐 자기가 서 있는 자리 말고 한 발짝만 내려와서 세상을 보고 이야기했으면 한다. 우리의 발언들이 우리 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과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하는 것 아니었던가.
“니가 살아 봐라”
대통령에게 한 말이겠지만, 거기에 들어 가서 사는 게 희망인 사람들에겐 상처가 되는 말이다. 그러지들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