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실수투성이 부부배낭여행 #16. 파리에서의 첫 날 가방을 도둑 맞다.

solneum 2020. 12. 5. 12:37

2주 간의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이제 파리로 가는 날. 몇 해 전 나 혼자만 파리에 일주일을 머물면서 여행을 했는데, 그 기억이 좋아 이번엔 아내와 둘이 핵심만 보고 가려고 돌아 오는 길에 3일의 일정을 떼어 놓았다.


바르셀로나에서 파리까지 요금이 50유로. 아... 저가 항공 만세. 미리 표를 샀고 전 날 인터넷 체크인을 했다. 공항 코드가 BVA, 예전엔 C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뭐 아무렴 어때.

 

파리 여행의 시작은 역시 에펠탑이지... (가방을 주목하시기 바란다)

아침 6시 20분 비행기라서 전날 미리 택시를 예약을 했고, 새벽에 공항으로 갔다. 여긴 모두 앱으로 처리를 하기 때문에 카운터에 들릴 필요 없이 지하철 타듯 바로 비행기까지 갔다. 저가항공의 특징이 이런 것일까. 좌석 두 개를 예약했는데 비행기 안에서도 좌석을 찢어 놓았다. 나란히 앉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단다. 괜찮다. 잠시 떨어 뜨려 놓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갈라 놓을 수는 없…. 흠, 이건 아닌가.


아무튼 오래 걸리지 않아 비행기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 어? 이게 뭐지? 여기가 어디지? 난 분명 파리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내린 곳은 동남아 어느 시골 동네 비행장처럼 보였다. 부랴부랴 검색을 했다.

 

프랑스 파리(근처)에는 공항이 세 개 있단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샤를 공항, 그리고 또 다른 국제 공항인 오를리 공항, 그리고 이름만 파리 공항이지 실제로는 한참 떨어진 곳에 있으며 저가항공인 라이언에어만 이용하는 보베 공항(이라 이름 붙인 시골 버스터미널)

 

내가 탄 비행기가 라이언에어, 내린 곳은 보베 공항이었다. 어쩐지 다른 항공사에 비해 많이 싸더라니. 버스비 17유로를 더 내고 양쪽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진 도로를 한 시간 달려 파리로 갔다. 파리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시골 풍경도 눈에 담아 가는 뜻밖의 행운(?)을 누렸지만, 두 번 다시는 누리고 싶지 않은 행운이었다.


지하철 타고 호텔로 갔으나 얼리 체크인 안 돼서 짐만 맡기고 근처 한식당에 갔다. 파리에서 무슨 한식당이냐 하겠지만 아침에 폴에서 먹은 프랑스식 빵이 입에 안 맞아서 맵고 짠 게 먹고 싶었다.

 

어디를 갈 까 하다가 비가 오려 해서 오르세로 갔다. 사흘 동안 미술관만 다닐 거니까 뮤지엄 패스도 두 개 샀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길고 또 그새 날이 개어 에펠탑으로 갔다. 오르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오면 되니까.

 

에펠탑을 둘러 싸고 있는 방탄유리, 그 앞에서 에펠탑 모형을 팔고 있는 청년들

파리 테러 때문인지 에펠탑 주변으로 예전에 없던 거대한 방탄 유리가 둘러져 있었고 그 안을 들어 가려면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그냥 오고 가며 볼 수 있고 또 쉬어 갈 수 있던 에펠탑과 그주변 공원이 이렇게 살벌한 곳으로 바뀌어서 맘이 안 좋았다. 나 같은 여행객이야 한 번 오고 말면 되지만 파리 시민들은 휴식처 하나 잃어 버린 꼴이다.

 

샤이오성을 지나 지하철 타고 몽마르트로 갔다. 여긴 변함없이 온통 성인샵이 줄 지어 있었고 몽마르트는 우리 부부의 취향이 아니었다. 비가 오락 가락해서 비를 피해 스타벅스로 카페로 들락 날락 하며 커피와 맥주를 마셨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좀 떨어진 곳의 한 프랑스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관광지에서 살짝 떨어져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골목에 위치한 음식점이 장사가 잘 된다면 그건 음식이 맛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러 그런 곳을 찾아 다닌다.
파리에 왔으니 파리 사람 답게 천천히 음식과 술을 즐겼다.

 

이 식당에서 이 사진을 찍을 때 이미 가방은 사라져 버린 후다. 내가 앉아 있는 저 의자에 걸쳐 두었는데.

거기 까지는 괜찮았다. 계산을 하려고 가방을 찾는데 가방이 없다. 의자에 걸쳐 두었는데 식사 하는 사이에 사라진 거다.
지갑과 여권 등 중요한 모든 게 들어 있는 가방이다. 식사를 하고 나가던 손님 아니면 식당 내부인 소행이 분명하다.
다행히 가게 안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우린 그 바로 앞이라 CCTV를 보면 범인을 잡을 수 있겠다 싶어 식당 주인에게 CCTV 확인을 부탁했다. 지금은 확인할 상황이 아니니 영업 마치고 확인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연락처를 서로 주고 받고 호텔로 갔다.


아무래도 기분이 안 좋아서 경찰서로 갔다. 가게 주인이 딴 소리하면 경찰이 도움이 될 거라는 깜찍한 생각을 한 거다.
경찰서에 갔더니 대부분의 경찰이 영어가 안 되고 딱히 도와줄 맘도 없어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영어가 되는 경찰과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여권 분실 확인증 정도는 써 줄 수 있다는 거였다. 그걸로 대사관 가서 여권 만들 때 쓰라는 거다.

 

가게에 가서 같이 CCTV 확인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사건 접수를 정식으로 하면 내 순서가 되었을 때 가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한 달 안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파리에서는 이런 경우가 워낙 많아서 바로 바로 다 처리할 수는 없다는 말도. 난 이틀 후에는 파리를 떠나야 하고 당장 지갑도 여권도 없는 상황에서 별 의지도 없는 파리 경찰의 도움을 한 달 동안 기다릴 수는 없었다. 접수 서류를 버리고 돌아 나오는데 문이 안 열렸다. 경찰서 문은 경찰이 열어 주지 않으면 열리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파리에서의 첫 날은 그렇게 시작 됐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가방 잃어 버리기 직전 ㅠㅠ


오늘의 팁.
파리에서는 내 가방이 내 몸에서 떨어 지는 순간 내 것이 아니다. 식당에서도, 호텔에서도, 거리에서도…… 소매치기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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