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LP를 보며 옛 친구를 떠올리다
국민학교(내가 좀 연식이 있어) 다닐 때 같은 동네 살면서 친하게 지낸 친구가 하나 있어.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형이 LP를 모으는 걸 봤어.
집에 전축(그 때는 다 이렇게 불렀어)도 없는데 그건 왜 사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 형이 그러더라.
“전축은 다음에 돈 생기면 사면 되지만, 레코트판(다 이렇게 불렀다니까)은 시간 지나면 못 살 수도 있어. 살 수 있을 때 모아 놔야지.”
그 말을 들으니 몇 살 차이 안 나는 그 형이 어른으로 보이더라.
그 친구와는 다른 고등학교 다니게 되면서 좀 멀어졌어.
그러다 몇 년이 더 지나고 내가 직장 생활 막 시작했을 때 찾아 와서는 급하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어.
그렇게 큰 돈도 아니지만 또 적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정도의 금액. 옛 친구가 부탁을 했을 때 거절하기 참 애매한 금액이었어.
빌려 줬지.
그 후로 연락이 끊겼어.
돈 못 갚아도 연락은 해도 되는데 그걸 안하더라고.
그리고 또 몇 년이 더 지나 내가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연락이 왔어.
집에 찾아 오겠다고 하더라.
친구의 어려운 시기가 지났나 싶어 좋더라.
와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 좀 하다 돈은 안 갚고 그냥 갔어.
돈 갚을 형편 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라.
사실은 돈을 더 빌리려고 온 거였어.
그런데 그 때 내가 살던 집은 부천의 어느 변두리에 있는 옥탑방.
거기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이 있고, 다섯 살 먹은 조카도 함께 돌보고 있었거든.
집 주인이 도망가서 집이 경매 중이었는데 경매가 끝나면 그 옥탑방마저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었거든.
내 사는 모습을 보고, 상황을 파악하고는 돈 더 빌려 달라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고 그냥 간 거야.
이제 연락은 끊지 말고 살자는 게 마지막 인사였는데, 그 이후로 그 친구와 연락이 닿은 적이 없어.
마지막으로 본 게 25년 전이니까 그 친구도 많이 변했을 거야.
어제 벗이 포스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진 속에서 한 쪽 벽을 가득 채운 LP를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났어.
그냥 우연히라도 한 번 보고 싶네.
내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하는 좋은 친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