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석에 드러 누워 자본주의를 생각하다.
(2007/11/17)
얼마 전 비행기 좌석에 대한 내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비행기 좌석은 능력에 따라 차별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구별 되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늘 이코노미석만 타는 내게 가끔 지나면서 보게 되는 비지니스석이 짜증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이번 한국 방문길에 비지니스석을 이용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내 돈 내고 그 자리를 산 건 아니다.
싱가포르에 와서 출장 몇 번 다녔더니, 마일리지가 쌓여 등급이 한 단계 올랐단다.
등급이 오르면 (비지니스석이 비어 있는 경우에) 한번은 보너스로 좌석 승급을 해 주기도 한다는데 그게 이번이었다.
아내와 함께 동행이라 그런지 아내도 함께 승급 해 줬다.
아내와 둘이서 비지니스석에 앉아, 아니 드러누운 채 한국까지 여행다운 여행을 했다.
180도로 펴 지는 의자와 거기에 붙은 각종 편의시설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갖다 주는 음식과 갖가지 배려...
'돈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돌아 오는 비행기는 물론 이코노미석이었다.
비지니스석을 탔던 기억 때문인지, 돌아 오는 내내 고역이었다.
드러눕기는 커녕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여섯 시간을 갇혀 있어야 했다.
비즈니스석은 일부가 비어 있었지만,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없는 한 비워 둔 채로 운항을 한다.
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불편하다.
좁고 불편한 이코노미석 때문이 아니라, 빈 채로 운항되는 넓고 안락한 비즈니스석 때문이다.
‘돈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 짙어질수록 세상은 더욱 살기 척박한 곳이 된다.
나도 안다.
돈 많이 낸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그 덕에 여러 사람들이 좁고 불편한 자리일 망정 싸게 이용하는 것. 그게 자본주의 원칙에 맞다는 것.
그래서 자본주의원칙, 시장의 원칙이 싫다는 거다.
아프리카에서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어도, 미국에서는 수확한 오렌지가 넘쳐나면 바다에 버린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그 오렌지 값을 치를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자본주의원칙, 시장의 원칙이란다.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는 게 원칙에 맞단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악의 발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