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안 가기로 했어.
5월에 한국 들어갈 생각이었어.
작년 10월에 위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가 전화를 하면 다 나았다고 괜찮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같이 병원도 가서 경과를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6개월만에 다시 가려고 한 거지.
결혼기념일이 5월 말이고, 작은 딸도 대학 졸업해서 시간이 되고 해서 타이밍도 딱 좋아.
나와 큰 딸만 2주 휴가 내면 가족 여행이 되는 거지.
사실 해 바뀌고 바로 휴가를 냈어.
나도 나지만 병원 다니는 큰 딸은 지금 시국에 외국 가려면 결제 받을 게 많거든.
그런데 어제 그 휴가 다 취소했어.
한국 안 들어 가기로 한 거지.
본가가 진주에 있는데 거기 가서 즐겁게 여행하고 맛있는 거 먹고 사람들 만나고 하는 짓, 못할 것 같더라고.
나도 알아. 그러면 안 되는 거.
선거 때 누굴 찍었느냐 하는 거 하나 가지고 사람 판단하는 거 아니라는 거.
이번 선거 결과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거.
(박근혜가 대통령 안 됐으면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없었을 거야.)
그런데 말야, 머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가슴이 말을 안 듣네.
지금 이 상태로는 누굴 만나도 어디를 가도 뭘 먹어도 즐거울 것 같지가 않아.
멍하니 있다가도 저렇게 무도한 놈이 내 나라 대통령이고 감옥에 가 있어야 할 부인과 장모가 큰 소리 치고 다닐 게 생각이 나서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야.
게다가 그 주변의 인물들은 또 어떻고. 장제원, 권성동, 한동훈, 권영세…. 아, 씨.
자고 일어났더니 선진국이 되었는데 잠깐 졸다 깼더니 다시 브라질, 필리핀, 미얀마 뭐 그 근처에 가 있는 거잖아.
이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래서야.
남의 나라에 있으면 그나마 질문하는 기자 입에서 “정말 외람되오나….” 따위의 말이 나오는 19세기 적 상황을 좀 적게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기사 연재하고 있는 것도 당분간 안하겠다고 이야기했어.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치면 그 놈 얼굴이 떠 오르고, 그러면 욕과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 걸 어떡해.
페북 벗 중에 윤석열 찍은 사람들은 대충 다 정리했는데 그래도 윤석열 따위가 대통령인 나라도 괜찮다는 사람들은 아직 몇 있어.
참 비위도 좋다 싶어. 사람이 살면서 미감이라는 건 먹지는 못해도 참 중요하거든.
그런데 윤석열 일가는 보면 미감이라고는 정말이지 일도 없는 것 같아. 그냥 흉해.
그런 놈을 보면서도 괜찮다는 사람들의 미감도 심히 걱정스러워.
사실 나야 말로 괜찮아야 될 사람이야.
일단 남의 나라에 살잖아.
다국적 기업에서 매니저 하면 내가 그만 두지 않으면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도 없어.
게다가 난 달러로 월급을 받아. 윤석열이 당선된 이후 일주일 사이에 8원이 더 올랐네.
윤석열이 아무리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한국에 아주 돌아가지 않는 한 내가 받을 피해 거의 없다구.
그런데 안 괜찮아.
내 부모 거기 살고, 내 친척, 친구, 애인…. 아무튼 다 거기 살고 그 놈의 결정 하나 하나에 영향을 받게 되는 거잖아.
무엇보다도 그동안 자랑스러웠던 내 나라가 벌써부터 창피해지기 시작했다구.
그래서야.
당분간은 그냥 한국하고 거리를 좀 두려고 해.
그래야 술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몸도 마음도 다 멀리한 채 나부터 좀 추스리려고.
이거 사실은 약올리는 거야.
난 한국 안 들어가면 되는 거지만 한국에 사는 벗들은 그마저도 안되잖아.
그러니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
지금의 이 엿같은 기억을 뼈에 새기고 다음엔 절대로 이런 일 없도록 좀 더 열심을 내는 수 밖에.
아무튼 친애하는 내 벗들, 이번 말고 다음에 지금 보다는 더 나은 때에 보자구.
그런 때가 좀 일찍 왔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