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친근하게 진보할 순 없을까?
(2006/12/18)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난 그의 활동을 지지하고, 그의 삶을 존경한다. 그를 만나면 언제나 많은 배움을 얻을 뿐더러, 나태한 내 삶에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그와 만나는 일은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러 갈 때는 자가용을 끌고 갈 수가 없으며, 그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밥 한 톨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일은 지구에 칼을 꽂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앞에서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다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그의 행동은 분명 옳다. 하지만 내 삶이 그가 당연하다 여기는 선에 조차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만날 때는 늘 긴장해야 하고, 그 긴장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는 그 친구를 만나는 걸 꺼리게 된다.
오마이뉴스는 진보매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대중매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보인사와 시민단체 회원들만의 것이 아니라 기업체 대표부터 서민, 학생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 인터넷 언론이다. 난 오마이뉴스가 지면에 실린 주장은 옳지만, 대중들이 가까이 하기엔 불편한 그런 매체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불편한 당신은 환경운동을 하는 내 친구 하나면 충분하다.)
오마이뉴스에 한미 FTA 홍보 광고가 실린 것을 두고 말이 많다. 기사로는 한미 FTA 에 반대하면서 어떻게 정반대의 의견을 광고란 이름으로 실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다. 그럼 오마이뉴스에 실린 광고 가운데 한미 FTA 홍보 광고만 문제가 되고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같은 잣대를 들이대자면 고 하중근씨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포스코의 광고도 내려야 하고, 무노조 원칙과 편법세습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삼성의 광고 역시 자격미달이다. 부동산 광풍의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 대형 건설사의 광고 역시 오마이뉴스에 실을 수 없다.
물론 민중의 소리, 참세상, 레디앙 같은 진보언론들은 FTA 홍보 광고는 싣지 않는다. 그들이 유연하지 못하다는 소릴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역할이 있고, 논조가 있다. 그 가치를 존중하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도 그들과 같아야 한다는 건 무리다. 오마이뉴스 역시 그 나름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름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언론도 필요하지만,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발을 맞추는 언론도 필요하다. 오마이뉴스는 후자다. 독자들이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읽을 때 늘 긴장감을 갖게끔 만들 필요는 없다. 이 나라에는 독자들이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다가와서 김치 냄새 좀 풍겨도 별 흉이 되지 않는 그런 진보 매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오마이뉴스가 이제껏 해 온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가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 건 옳다. 하지만 다른 벗들이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고 해서 손가락질 하고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건 오버다.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 주는 게 순서다. 그게 운동이고, 그게 진보다.
FTA 홍보 광고. 나 역시 못마땅하다. 굳이 싣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지만, 그걸 실었다고 해서 오마이뉴스가 변절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오마이뉴스가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FTA 홍보 광고를 실은 걸 두고 시비를 걸 만큼 충분히 진보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있는 사람들 말고, FTA 가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잘 모르는 서민들이 오마이뉴스를 즐겨찾기를 바란다. 그들이 광고와 기사를 비교 해 보고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시각을 만들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게 내가 바라는 오마이뉴스의 모습이다.